사장되지 않고 지표가 될 수 있기를

졸업작품 전시회 후기

by 김하정

여름도 잘 견뎠는데 정작 가을에 앓아눕고 말았다.

가을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돌림병처럼 들이닥쳐서

공들여 놓은 일상을, 제법 자리 잡은 루틴들을 온데간데없이 흩어 버렸다.

좀 쉬어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라지만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울상이 되고 말았다.

요령 없이 앞만 보고 내 달리다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진 격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소중한 만큼, 시간이 흘러야만 제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 자숙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아이의 졸업작품 전시회까지 걸려있으니 지성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입시부터 대학 4년 동안의 결실인 만큼 직접 가서 보고 축하해 주고 싶었다.

어찌 보면 졸업식보다도 더 중요한 날이지 싶어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외에도 종류가 많아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도 지난한 과정이었다.

초기에는 영상 디자인에 흠뻑 빠져서 진로까지도 정할 참이었다가 AI가 도입되면서부터 또다시 고심했던

것 같다.

아이들도 별 수 없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먹고사는 문제에 돌입하게 되니 바라보는 맘이 애잔해졌다.

밤잠설치며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말해줄 것이기에 작품성이 얼마나 있을까는 중요하지 않았다.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것에 비교하면 서툴겠지만, 그들의 처음도 여기서부터 시작됐을 것이기에

거기에 비할 바 아니겠다. 그들도 초심을 그리워할 때가 있기 마련일 테고..


큰 기대 없이 가족들이 한 곳에 모인 것만으로도 흡족해서일까 의외의 아이디어들에 고무됐다.

서로 겹치는 부분 없이 각자의 취향이 보이고 문외한이긴 하지만 당장 판매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아이의 작품도 사심이 들어설까 군더더기 없이 신선했다.

더구나 제 작품이 아니어도 설명을 곁들여주니 하나하나에 애정이 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외부관계자들의 직접적인 컨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홍보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졸업생은 넘치고 아이들의 길 찾기란 막막하기 이를 때 없어 벌써부터 초조해한다.

개개인이 발로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람회처럼 적재적소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창구가 생기면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시가 끝나도 각각의 작품들이, 아이디어들이 사장되지 않고 포트폴리오가 돼서 자신을 알리는 지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지금이 발판이 돼서 자기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가 돼주길 바랐다. 경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대신 기회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크게 웃는 사람보다 자주 웃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처럼 자주 웃다 보면 끝까지 웃을 수 있을 테니까 놓지만 않는다면 각자의 길은 열릴 것이다.

부디, 이 풋풋한 꿈들이 주눅 들지 않고 승승장구하기를 부모의 마음으로 선배의 마음으로 간절히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달걀 프라이는 양보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