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미열이 있고, 고개를 들라치면 빙그르르 도는 것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분명 회복되고 있습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지고 있다는 느낌. 벼르고 벼른 여행의 출발선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행주에 비누칠을 하고 박박 문지르는 일이, 식초를 넣고 마저 삶는 일이 이렇게까지 설레는 일이었던가?
어이없긴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애물단지였다가 다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복귀되고 있으니 이런 설레발이 과한 듯 과하지 않습니다.
서툰 일일수록 의욕이 앞서 필요이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도 마무리될 쯤에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힘으로 하는 운전사처럼 요령을 모르고 '열심히'라는 말에 숨어 물불을 가리지 않은 결과겠지요?
물 흐르듯 표 나지 않던 일상도 강제로 멈춰져서 고인 물이 되고, 앞당기려던 계획 또한 한참 유보됩니다.
'조삼모사' 격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면서도 매번 4개를 먼저 선택하고 보는 것은 우선을 뚫을 수 있어야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욕심내지 않으면 영영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겁이라는 것만 키울 뿐이라서 일단은 부딪히고 보는 거지요. 퇴보일 수 있지만 내 나름의 '전진법'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로를 거친 서툰 일은 익숙한 일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지요.
몸도 마음도 회복됐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가장 시급한 것들을 찾아 손을 뻗칩니다.
소속된다는 것은 나의 쓰임새를 찾아간다는 것이고, 기꺼이 유용하게 쓰이고 싶은 능동태의 삶이 되는 거지요. 요긴하게 쓰일 곳을 찾았다면 의도한 데로 이루기 위해 애써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얼마든지 쓰여보고 싶은 거지요. 대단한 업적을 이루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내가 지금 잘 쓰이고 있다는
것에서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나의 쓸모를 확인하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하나를 이루고, 하나를 잃었다가 다시 둘을 만들어 개선장군처럼 돌아와 일상을 진두지휘합니다.
이 기세를 몰아 당분간은 무턱대고 부지런할 예정입니다. 물론 일상은 그 옛날의 전진법을 거쳐온 터라 힘조절이 잘 돼 있기도 해서 무리일 수는 없지요.
충전됐으니 달라질 가을이 설렙니다. 눈부신 가을을 이제야 만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