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조쯤이었나 현관문에 전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2025 인구주택총조사 안내문이었어요.
방문했는데 못 만나서 인터넷. 전화. 면접 등 원하는 방법으로 조사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인터넷 조사 부탁 드린다는 메모도 돼 있었습니다. 기간도 아직 여유 있겠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은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소리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더니 재방문 나와서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응하지 않아서 미안했지만 온라인 조사가 서로 편하기도 하고 굳이 대면하기 멋쩍어서 침묵으로 부재를 위장했습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구나. 세 번씩 방문하게는 하지 말아야지.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나가 있으니 제외돼서 두 사람 것만 하면 금방 하겠구나 했습니다. 생각보다 세부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본적인 신상에서부터 일 할 수 있는 여부를 구분 짓는 건강상태를 체크합니다. 출생지, 직업과 근무처뿐만 아니라 근무 부서까지 기재하게 돼 있었습니다. 하다 말고 남편한테 전화 걸어 물어보기도 그렇고 대략 알고 있는 선에서 답했지요. 불필요하게 자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든 조사는 정확도가 생명이니 각설하고 열심히 협조하기로 합니다.
다음은 내 차례인데 올봄에 퇴사했으니 답할 게 몇 가지 없었습니다. 의외로 일찍 끝나긴 했는데 뭔가 책잡힌 사람처럼 뻘쭘했습니다. 잠깐 외로웠던 것도 같고..
지금 일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적인 직업이 없다는 답변에 바로 '경력단절'로 분류됐던 것에 대한 이물감이었을까요? 수긍이 되면서도 어감 자체가 세상과 나를 바로 깍둑설기 해버린 듯 느껴졌었나 봅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경제 활동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묻는 것에서 남편의 직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문자로 확인하는 격이어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동안의 공로는 온 데 간 데 없고 옆에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읍소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어찌 됐든 나에 현주소를 군살 없이 보여줘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내년 조사 때는 문자화된 직업을 갖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부를 떠나 시도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태도만큼은 분명히 해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합니다.
인구주택총조사 덕분에 내 일에 대한 충성도를 고취시켰으니 감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