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에 큰 아이가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한다. 친인척이 아닌 동료나 친구로는 처음 가보는 결혼식이었으니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짐작이 맞았던지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학부 때 한 학기 휴학하고 6개월 동안 전공 관련 인턴생활을 했을 때 같이 지낸 동료였다고 한다. 그래도 혼자 가기는 어색했는지 그때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과 같이 다녀왔단다. 아이보다는 연배도 있는데 따로 취업하지 않고 아직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가 세상에 트라우마가 생겼던 건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숨 고르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은 든단다.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인데 매사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회의적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심드렁 무심한 척 하지만 지금이 그 친구에게는 치유의 시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보다는 두세 살 많아서 그럴 수도 없겠지만 어설피 개화하려 들지 말고 가끔 안부 전화하는 거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잘 지내요? 하고 물어봐 주는 게 어떤 충고보다도 좋을 때가 있어. 무관심하지만 말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그 친구에게도 시간이 압축돼서 다가오겠지. 그냥 흘려보낸 시간은 없다.
결자해지라고 했든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끈질기게 붙들고 놔주지 않던 생각도 어느새 해체될 때가 올 거야. 그런 다음엔 지난 시간을 만회하려고 너무 허둥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해서 그 시간들을 낭비했다고 후회하느라 앞으로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선은 통과가 먼저겠지만..
그러고 보니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실소한다. 이유야 서로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모든 게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은 절대 오래 끌어서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지나고 보면 알기에 끌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름 다음에 가을 오듯 받아들이고 갈무리하는 시간은 오로지 내 속도, 내 보폭에 맞춰 나가야 덧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어설픈 참견은 금물이다. 잘 헤쳐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 속에서도 아이에게 영향이 미칠까 염려하고 있었다. 우울한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기 마련이라서 가능한 한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옆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다. 혹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방법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빌미 삼지 않을까 노파심 같은 것이겠지만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아이는 씩씩하면 좋겠다는 이기심일 수 있으니.. 하지만 나조차도 가족을 비롯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우울을 조장하는 사람인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인지 돌아볼 때가 많다.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고 동의를 구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 이유를 데려고 궁리하느니 차라리 시작해 보면 될 것을, 낙담먼저 하고 보는 습성이 아직도 내게 존재함을 안다. 천성이 우울일지라도 가능한 한 밝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중이다. 애쓰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게 삶이기도 하니까.
삶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지만 뒤집어 보면 그렇게 절망적일 것도 없다는 게 요즘 생각이다. 외부에서 비롯된 상처는 치유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러는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자리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삶은 지속되고 어렵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딛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자정방법도 내 안에 있기 마련이니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매번 갱신하다 보면 삶에도 맷집이란 게 생겨서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게 된다. 나름대로의 공식 같은 게 생기기 마련이고.
아이 졸업식 때도 봤지만 학부생과 맞먹을 만큼 박사 졸업생도 많았다. 그 많은 박사들도 다 아우를 수 없는 게 삶일 테고 내 전문 분야만 파도 부족한 게 삶이기도 한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거머쥐려고 하지 말고 최소한 이 것 아니면 안 되겠다 하는 것에 전력질주 하다 보면 힘에 부쳐도 숨 쉴 공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생은 이 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한 칸 한 칸 채워가다 보면 빙고를 외칠 때가 도래할 것이다. 도래하지 않는데도 실컷 해보고 나면 적어도 후련하긴 할 테니까. 후련이라도 하면 그게 어디야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