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잎도, 삶도
입동이 지나 선지 하루해가 너무 짧기만 합니다.
부챗살처럼 휘리릭 펼쳤다 접듯이 순식간에 지고 말아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부채감만 남곤 합니다.
빨래를 널다 말고 햇살이 너무 좋아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다가 하늘을 쳐다보기를 반복합니다.
"우물 속에는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는 윤동주 시인의 선한 눈빛이 떠오릅니다.
고교 시절 기타를 둘러 맨 친구의 뒷모습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문자만 주고받다 그것마저도 미루고 있는 지금이지만 마음은 늘 가깝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러 가듯 좀이 쑤셔 손놀림이 빨라집니다.
주말에 비도 온다는데 이번 주 지나면 잎들이 다 지고 말 것 같아 서두릅니다. 겨울 양식처럼 담아두려고 휴대폰 충전이 100% 되기만을 기다리는데 그조차 더디기만 합니다. 두문불출, 내게서 곰팡이 냄새라도 날 것 같아 그 "파아란 바람"에 날리고 햇볕에 소독해야겠습니다.
엊그제 도서관에 갈 때만 해도 떨어진 잎보다 달려있는 잎들이 더 많았는데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수북합니다. 이리저리 흩어져 사람들 발 길에 잘게 잘게 부서진 채로도 뒹굽니다. 미세하게 나달거리는 은행나무 잎들이 옥수수콘칩 같습니다. 똑 따서 입에 넣을라치면 바삭바삭 소리가 귀에 들린 듯합니다. 은행잎을 보고 식감을 얘기하는 게 외람되긴 하지만 생각이란 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침저녁 지성으로 먹고 있는 연두색 알약에도 은행잎 추출물이 들어 있지만 맛은 느낄 수 없어서 어떤 맛일까 궁금해집니다. 은행잎 모양 노란 칩은 추억의 맛이 나지 않을까? 추억의 맛은 기대치가 너무 많아서 어떤 맛으로 특정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어설피 출시하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나름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은행나무로써는 과자로 변신하기엔 자존심 상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이쯤에서 그치기로 합니다. 아무리 못 먹는 게 없는 사람이라지만 그렇게 까지 전락시켜야겠어? 실컷 조롱해 놓고 왜 멈출까? 더 해 봐? 눈 흘기는 것도 같습니다.
뭉쳐있다가 저마다의 사명으로 투하되는 낙하산 같기도 하고 민들레 홀씨 같기도 합니다. 어디에 정착할지는 아무도 모른 채 그저 바람이 이끄는 데로 내맡깁니다.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은 노란색이었을까?
마을 어귀의 나무에 수없이 매달려 있었다는 노란 손수건을 떠올리며 노란색은 약속의 색깔이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봄이 되면 파란 잎으로 살다가 내년 이맘때면 다시 물들어 보이겠다는 약속.. 그래 꼭 그러겠다고 손가락 약속이라도 받아낸 듯합니다. 열매까지도 다 주고 가는 은행나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여기저기 눈길 붙잡는 곳이 많습니다. 간단하게 시장을 보고 시민공원으로 향합니다.
시작부터 눈은 바빠지고 걸음걸이는 자꾸만 늦춰집니다. 종류도 많아 분별할 여력이 없어서 울긋불긋이라는 상투적인 말로 대신할 뿐입니다. 색깔만으로도 취합니다. 빨간 단풍잎들이 햇살을 받아 유독 빨갛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침엽수, 활엽수들이 갈색을 책임지고 각자의 개성대로 혼재된 모습이 그야말로 오색창연입니다. 옆 친구에게 딴지 걸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자기 색깔에 충실할 뿐인데 어우러집니다.
게다가 파아란 하늘이 뒷배가 돼주니 마음껏 눈부시기로 작정한 듯합니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합니다. '매일같이 잠깐씩이라도 둘러볼 걸' 감기라도 덫챌까 봐 꼭꼭 숨어 지낸 시간이 후회됐습니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거니까요.
열심히 캡처해서 아이들에게, 언니에게 전송합니다. 남편에게는 슬쩍 미안해서 전송을 미룹니다.
당장 "하늘 죽인다!", "어디야?, 좋겠다!" 남들 일하고 있는데 어디 멀리라도 부러 구경간 것처럼 문자에도 부러움 섞인 시샘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은 "시민공원?" " 우와, 벌써?" 각종 이모티콘들을 난사합니다.
'나 바빠. 이제 시작이거든?! 뻐겨 봅니다.
국화 축제도 열리고 있었지만 단풍만큼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땅에 뿌리내려서 해마다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게 아닌 화분채 옮겨 다니는 꽃이라서 그런 걸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꽃이 지천에 피어있어도 자꾸 시선은 위를 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파아란 하늘이 대비 돼서 서로를 돋보이게도 하지만 포물선을 그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도 같습니다.
'봄은 아래서부터 올라오고 가을은 위에서부터 온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봄은 땅 속을 헤집고 새싹이 움터서 위로 펼치며 올라오는데 가을은 위에서부터 잎이 물들면서 아래로 떨어져 내년 봄에 새싹을 틔우는 밑거름이 돼준다는 거겠지요. 돌고 도는 자연의 순리를 일축한 말인 것 같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자연은 지는 모습마저도 아름답습니다. 입는 옷이 저렇게 빨갛고 노랗다면 참 촌스러울 텐데 원색이어도 파스텔톤이어도 상관없이 아름답기로 담합한 것 같습니다.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것은 자연 밖에 없을 겁니다. 사람도 저렇게 지고 싶다는 각자의 소망 같은 것이겠지요. 이루어지지 않는 데도 바라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욕심일 수 없는 경건한 기도입니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습니다. 겨울이 종짓목대고 있으니 더 빛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한시적일 때 간절해지는 마음을 헤아린 듯합니다. 내년의 새로운 잎을 위해서 자양분이 되는 것을 자처합니다. 그걸 지켜보자니 연신 고마워 고마워 머리 조아리게 됩니다.
협업의 중요성을 자연에게서 배웁니다. 누가 주연이고 조연일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가 다르게 눈부십니다. 서로의 개성을 훼손하지 않은 채 어우러지는 것, 우리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에 가을을 그리워하고 봄을 얘기합니다. 여름이 되면 다른 계절을 그리워하다 놓친 겨울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지나간 것과 지날 것에 더 애착을 갖는 게 우리의 습성 같습니다. 풍경도, 소중한 사람도 눈앞에 있을 때 더 많이 바라봐 주기로 합니다. 전, 후도 아닌 지금이라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눈 맞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