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라

모두들 애쓰고 있으니~

by 김하정

이른 출근을 배웅하고 돌아서면 사방이 적막합니다. 차도에 차들도 드문드문, 건너편 교회에 대형 트리가 새벽을 받들고 있습니다. 새삼스레 12월이구나 합니다. 한 장 남은 달력을 쳐다봅니다.

13월, 14월이 이어질 것처럼 어머님 기제사와 김장 담그는 날을 체크하는데 쓸 뿐 무심했다가, 인기척이 있어야 켜지는 센서등처럼 이제야 감을 잡습니다.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조차도 온누리에 평화와 은총이 눈처럼 내려앉기를 바라게 되는 달에 홍콩의 비보가 있습니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옛말이 이번에도 들어맞고 맙니다. 옛사람들은 현세도 꿰뚫고 있는 듯합니다.


생명이, 사람이 추풍낙엽 같습니다. 관계자 몇 사람 경질하고 책임 공방을 한단들 무슨 소용일까요?

생사를 뒤바꿀 수 없고, 가족 잃은 폐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추위에 떨며 언제 끝날 지 모를 구조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은 또 어떨까요?

살려내는 일이 아닌 수습이 되고 말 때면 애써도 애쓰지 않는 것처럼 허탈해질 모두의 애씀이 안타깝습니다.


잔뜩 벼렀을 K팝의 꽃 '마마어워즈' 행사는 무색해지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엉거주춤 추모 행사로 가름할 수밖에요. 세상이 요동을 쳐도 변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 대한 예의'같은 거겠지요.


대나무 지지대의 탄성과 가벼움, 비교도 안 되는 비용절감의 효과 뒤에 숨은 위험의 요소들을 모를 리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따른 문제라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비난은 답이 될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하지 않는 삶, 거울삼지 않는 삶은 타인의 삶까지도 지옥으로 만든다는 것을 입증하고야 맙니다.


영화 'wonder'에서 주인공 '어기'만이 애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무게 중심이야 더 있고 결국은 당사자가 넘어야 할 산들이 훨씬 많겠지만 가족, 친구, 이웃, 교장선생님까지의 애씀이 있었기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겠죠. 같은 방향을 바라봐주는 마음들이 합해져서 한 사람을 구축해 내는 거지요. 다른 나라 다른 사회에서 2025년을 보내고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지듯이 사회도 나라도 관습마저도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연일까요?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읽은 뒤라 내가 주인공의 친구였다면 똑같이 그 선택을 수락할 수 있었을까? 단지 내 취지와 다르다고 해서 거절하고 말았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안락사를 결정하고 그 곁을 지켜달라는 부탁말이에요. 그 과정을 같이 하면서 서로의 인생에 등장한 사람들의 애씀이 적나라하게 보여서 몇 번씩 숨 고르기를 하게 됐던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 되돌릴 수 없어서 수습차원일망정 궁여지책일지라도 애쓰는 것은 숭고입니다. 바로잡아보고 싶은 마음일 테니까요.

어디로 갈지, 얼마큼 주어질지도 모른 채로 서로의 인생에 영향 주고 영향받으면서 우리 애쓰고 있잖아요?

분명 내 인생인데 나의 애씀은 당연한 것인데도 유독 나만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애씀을 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도 있는데 마음 한편을 내게 할애해주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감사하게 됩니다.


내 일상을 그저 써보는 것으로 여한 없으면서도 그것마저 의문스러워서 주춤하고 있을 때, 일면식 없는 독자가 남기는 댓글에 힘을 받고 다시 고쳐 앉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나 혼자 살아지는 게 아니구나 실감하는 참입니다. 그 친절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wonder'에서도 '어떻게 지내요'에서도 말합니다.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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