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서 테라피스트로,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나는 테라피스트가 된 디자이너다. 특별할 것 없다. 그냥 직업을 바꾼 사람이다.
직장생활 할 때는 회의가 끝나지 않았다. 입이 항상 말라 있었다. 왜 이 시안인지 설명하고, 왜 이 컬러인지 설득하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며 서류를 올렸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내 머리 위에 유리천장이 있다는 것을. 투명해서 없는 줄 알았는데, 손을 뻗으니 차가운 벽이 만져졌다. 그만뒀다.
디자이너 때의 버릇은 여전했다. 관심 있는 건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분석했다. 예전엔 디자인 책과 전시였고, 이제는 테라피 책과 세미나였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라 인체 해부학을 이미 알고 있었다. 덕분에 배움이 빨랐다. 내담자의 근육을 만질 때마다 포토샵 레이어가 떠올랐다. 투명도를 조절하듯 한 겹씩 만져가며 아픈 곳을 찾았다.
처음엔 실수했다. 사람들에게 프레젠테이션하듯 설명했다. 당신의 승모근이 이렇게 뭉쳐서, 신경을 압박하고 있어서… 그들의 눈이 흐려졌다.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몸 안의 매듭을 알아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어깨를 만지며 엉킨 실타래를 떠올렸다. 디자인할 때 픽셀 하나하나를 조정하듯, 조심스럽게 한 올씩 풀어갔다.
누군가 말했다. 선생님 손은 뭔가 다르다고. 나는 웃었다. 선을 그리던 손이 이제 통증의 지도를 읽는다. 그뿐이다.
여전히 나는 관찰하고 분석하고 고친다. 화면에서 몸으로, 시각에서 촉각으로 옮겨왔을 뿐. 본질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