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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Dec 21. 2021

중원에서 관중으로 진입하는 방법

- 조조를 위한 변명

조조는 사후에도 여러 인물들에 의해 많이 언급되는데, 자치통감에 보면 남북조시대 양간이라는 자가 조조의 군사작전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천하의 조조의 깊은 전략을 이해하지 못해, 언급한 말이 있는데, 조조로서는 다소 억울해 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그를 대신 변명해주겠다.


때는 남북조시대에 북위의 소보인은 관롱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스스로 반기를 들고 모반을 하였다. 소보인은 관중의 최대관문인 동관을 틀어막고 조정군을 막고자 했다. 동관은 낙양에서 관중을 들어갈 때 뚫어야하는 최대관문이자, 천혜의 요새이다. (동관을 우회하는 길은 하동으로 가서 황하 상류에 있는 포판으로 건너 관중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북위조정에서는 장수 장손치를 보내 소보인을 평정하게 했다. 장손치는 동관으로 진군해왔다. 이 때 양간이 장손치에게 찾아와 이렇게 간했다.

"옛날 위무제(조조)가 한수, 마초와 다툴 때, 한수, 마초가 동관을 점거하고 막았습니다. 한수, 마초의 재능은 위무제의 적수가 아니었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고 오래 간 이유는 동관이라는 험한 요새를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도적(소보인)이 이미 동관을 굳게 지키고 있어서, 위무제가 다시 온다하여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포판을 손에 넣고 황하를 건너서 관중으로 진입하면 소보인의 뱃속(관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앞뒤로 소보인을 공격한다면) 적군은 사지에 몰릴 것입니다."


즉, 천혜의 요새 동관을 직접 뚫는 것은 조조가 와도 쉽지 않으니, 하동으로 가서 북쪽 포판에서 황하를 건너서 관중 안으로 진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동관을 지키는 소보인군은 배후에 적군이 나타나게 되어 도망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동관전투도


조조가 억울해할만한 소리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동관에서 한수, 마초와 쉽게 승부를 내지 못한 건 사실인데 이는 조조의 신중한 전략 때문이었다. 마침 삼국지에서 조조가 한수/마초를 쳐부수고 나자, 양부라는 자가 조조에게 질문해서 조조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양부는 양간이 이야기한 작전처럼, 마초가 포판을 미리 대비하기 전에, 왜 하동으로 가서 포판으로  먼저 건너 풍익을 공략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오히려 난관인 동관을 공격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는지. 왜 나중에야 포판을 건너 영채를 단단히 세웠냐는 것이다. 


그러자 조조가 답했다.

"처음에 적이 동관을 지킬 때, 내가 하동을 공략하면 북쪽 강(포판)으로 건너올 것을 적들이 알아챌 것이다. 그러면 적은 나루터와 강가에 영채를 세워지킬 것이니 건너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대군을 동관에 모아놓고 동관에 집착하는 듯하면, 적들이 군을 동관에 모아놓고 방비하게 할 것이다. 그 사이에 서황과 주령이 (포판으로) 도하할 수 있었네. 그 후에 내가 도하하여 영채를 쌓고 얼음성을 만들었네." 라고 답했다.


이런 것을 돌아보면 양간은 조조의 심모원려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인데, 조조는 죽고 난 뒤라 후인들에게 변명할 수 없어, 내가 조조를 위해 대신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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