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내 친구들은 나더러 외국인보다 한국어 못하는 놈이라 말하곤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곤 그 말에 나도 공감이 되어 실소를 터트린다.
30년을 넘게 한국에서만! 자라온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는지
아빠, 엄마를 보고 자라
유전인가 싶다가도...
번뜩-
이유는 따로 있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는 누구보다도 활발한 아이였고, 그 덕분에 내 주장도 꽤나 하는 아이였다.
주장이 강해 일진아이들에게도 개겼다가 싸움이 난 적도 있다.
가뜩이나 예민했던 시절
일진과의 싸움으로 주변 눈치를 보고 있던 나는 내심 밖으론 강한 척하기 바빴고
강한 척을 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론 날 건드리진 않았다.
사실 속으론 완~전 주눅 들어있었다.
쭈글쭈글-
수업시간이 시작됐다.
나이 든 남자 선생님이 교과서 지문을 읽을 사람을 번호로 지목했다.
"23번"
아ㅡ 이런, 나다.
쿵쾅쿵쾅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떻게 해서든 일진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는데...
지문을 읽기 시작했고 내 머리와 내 입은 따로 논다.
더듬 더듬
더듬 더듬
한 단어 한 단어 읽기가 어려웠다.
결국 참지 못한 남자 선생님은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훈화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너 왜 그렇게 더듬더듬 읽어!"
-(속마음) 예민한 사춘기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지금 일진들에게 찍혔다고요.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서..."
-(속마음) 아니요, 선생님. 저 하루에 소설책 한 권씩 읽었던 사람이에요. 취미가 책 읽는 거라고요!
"그냥 앉아!"
-(속마음) 고맙습니다. 근데 저 지금 너무 수치스러워요.
아마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사람이 적든, 많든
어느 순간 의식하기 시작하면
앞 뒤 맥락에 맞지 않게 말을 하는 습관이 시작된 게.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말보단 글이 편했다.
남들에게 말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보단
나의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게 편해져 버렸다.
이게 바로 스승의 은혜인가?
그 선생님 때문에....
아아, 덕분에
나는 이렇게 브런치 작가도 되어본다.
선생님 고오맙습니다.
스승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