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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댄서 Apr 14. 2024

벚꽃맛집 오픈런하려다 좌절한 INFJ 이야기

‘뻘쭘감자’와의 1차전은 패배

1.


“아이고, 속터져라~~”

오늘도 나는 그놈에게 지고 말았다.

그놈의 간사한 속상임에 홀라당 넘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접었다.


그놈의 이름은 '뻘쭘감자'이고, 내가 7살 때부터 내 뇌 속에 기생하고 있는 놈이다.

그놈의 MBTI는 ISFP로 매우 소심하다. 그래서, 뻘쭘한 상황을 맞이하면 나에게 속삭인다.


'이런 거 안해도 돼.

 이거 한다고 100억이 생긴다거나, 얼굴이 남주혁처럼 잘생겨진다거나 하지 않아.'


그러면서, 지금 내 욕망을 접고 편안하고 익숙한 장소와 행동을 하자고 속삭인다.

오늘도 이 뻘쭘감자와 한판 승부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합정역 벚꽃 맞집 카페 오픈런을 하려고 하는데 그가 또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그의 방해를 뚤고 내 욕망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2.


내 MBTI 유형은 인프제 INFJ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계획적인 행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뻘쭘감자 그놈과 자주 충돌을 한다. 그놈은 그냥 익숙한 곳을 선호하고 무엇을 계획했다가도 그냥 바로 포기할 수 있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내 욕망인 벚꽃맛집 오픈런을 위해 1주일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난 파워 J니까) 우선 벚꽃 만개 시기를 관찰하기 위해 벚꽃맛집 인스타를 아침 저녁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을 선택했고 회사에 휴가를 내고 시간 계획도 세웠다.


나는 혼자 가야하니까 그래도 뻘쭘함이 덜한 오픈런을 하기로 마음 먹었고, 집에서 일찍 출발해 합정역에 8시 착해서 9번 출구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다가, 9시 10분에 오늘의 목표 '그레이랩'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10시 오픈이지만 웨이팅이 있을 수 있으니까 조금 미리 이동하려고 계획했다.


여기에는 2년전에 한번 오프런으로 왔었다. 그때 설마 오전 10시 오픈 웨이팅이 있겠냐라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모르니 9시 30분에 카페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카페 문 앞에 10명 정도의 웨이팅이 있었다. 이런 이런 이런...

-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직장 안 다니는 대학생들인가?
- 벚꽃 보자고 오픈 1시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인가?

그리고, 웨이팅 사람들 중에 혼자 온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이고 쪽팔려. 내 앞에 7팀이 있었는데 5팀은 여여 커플이고, 나머지 2팀은 남녀 커플이었다. 내가 20대 청춘도 아닌데 이런 기괴한(?) 행동을 하는게 정상인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미친 걸까? ㅎㅎ


그때부터 뻘쭘감자는 포기 속삭임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그 공격을 막아내려고 까만 선글라스와 이어폰을 꼈다. 그리고, 버텼다. 마침내 10시 오픈 시간이 되었고 나는 벚꽃 정원 테이블에 앉아 벚꽃을 만끽했다.


행복했다.

2년전 그래이랩 오픈런



3.


그러나, 올해는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8시에 합정역에 도착해서 9번 출구 스타벅스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스타벅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된거야? 심장이 피시식~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기 시작했다. 지하철 출구를 다시 보니 9번이 아니라, 8번 출구였다. 어떻게 지하철 출구를 잘 못 나올 수 있을까?


스타벅스에서 뭔가 불안한 마음으로 커피를 한잔 마시고 9시 10분에 카페로 향했다. 합정역 사거리 대각선 방향에 카페가 있어서 나는 건널목 2번을 건넜다. 그런데, 그곳에 카페는 없었다.


헉...


스마트폰의 지도앱을 열었다. 방향이 틀렸다. 내가 있던 스타벅스에서 대각선 방향이 아니었다. 아뿔싸.. 하루에 2번씩이나 똑같은 실수를 하다니 바보같은 놈... 그러자 '뻘쭘감자'가 마구 마구 속삭이기 시작했다.

- 그냥 편안한 스타벅스 같은 곳에 가.
- 뭐하러 혼자 쪽팔리게 젊은이들만 있는 이런 곳에 온거니?
- 주위 사람들이 다 너만 쳐다보잖아. 이른 아침에 아재가 이 동네에서 얼쩡 거리니까 말이야.

그의 속삭임을 듣지 않기 위해 음악 볼륨을 키운 채로, 다시 건널목을 건너서 건너 카페 방향으로 왔고, 카페로 한발 두발 걸어갔다. 계획보다 시간이 좀 늦었다. 계획형 J유형으로서 아주 불편했다. 혹시 웨이팅 인원이 많아서 못 들어가면 어떡하냐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드디어 마지막 골목에서 우회전을 했다. 카페가 보였다. 그런데 웨이팅이 없다.

- 앗싸.. 1등이구나. 내 맘로 자리를 선택할 수 있겠는데..
- 음하하하하. 내 계획이 딱 들어맞는구나. 신나라 신나라~~~


그런데, 카페 안과 밖이 이상했다. 카페 앞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스태프 같은 사람들이 이러저래 뛰어 다닌다. 거기다 아이돌처럼 보이는 모델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이건 뭔 상황이지? 웨이팅이 있어야 하는데 없고 대관 촬영중이라니...  
- 내가 인스타 공지를 못 본 걸까?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열고 인스타에서 검색했다. 대관 또는 오픈 시간 연기 공지는 없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멘붕에 빠졌다. 그 사이에 '뻘쭘감자'는 계속 속삭였다.

- 여기는 오늘 대관이네. 그러니까 웨이팅 사람들이 없지. 너 계획은 틀어졌어.
- 어서 더 쪽팔리기 전에 돌아가. 촬영 스태프들이 너 뭐하는 사람인지 자꾸 돌아보잖아.

아아아악~~~


나 포기할래...




4.


나는 돌아섰다. 오늘 벚꽃맛집 오픈런은 포기했다.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내 욕망을 이루지 못해 서운했고,

내 계획대로 하지 못해 짜증났고,

내 소심함에 쪽팔렸다.


이렇게 어설프고 소심하게 '뻘쭘감자'에게 매일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뻘쭘감자'는 스윽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었다.


너, 뻘쭘깜자, 다음에 다시 도전할테니 기다려라!!!


* 내 욕망과 현실 사이

(좌) 내가 상상한 오늘의 나 (우) 현실 속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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