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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인형, 나는 부적에 너의 이름을 적었다.

[AI시대에 오컬트로 행복하기 #12]

by 감자댄서

1. 분노가 내 안에 독처럼 퍼졌다.


저주 인형이 도착했다.


저주 인형은 볏짚으로 만들어지 인형인데, 내가 증오하는 사람의 이름 또는 머리카락을 붙인 다음에 못으로 찌르고 불에 태우는 용도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고 해서 저주 인형이라 불린다.


회사에선 감정을 숨기며 산다. 특히, 화와 짜증은 철저히 감추는 게 ‘슬기로운 직장생활'의 필수 항목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회사에 나를 화나고 분노하게 만드는 사오정과 덤 앤 더머가 있다. 그 인간들 때문에 내 마음이 자꾸 흑화된다. 그래서, 저주 인형을 샀다.


저주 인형은 상대방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드리워지기 시작한 저주의 흑화 기운을 정화하는 것인가?




2. 그 사람 이름, 부적에 적었습니다


저주인형을 택배로 받았지만, 감히 저주인형을 박스에서 꺼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박스채로 그냥 놔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박스를 열었다. 저주인형 패키지 하나를 꺼냈다. 저주 인형은 짚으로 만든 인형 하나와 노란색 종이에 인쇄된 부적 하나 그리고 못 3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주인형의 사용 방법을 읽어보았다.

첫번째, 부적에 그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두 번째, 부적을 인형에 붙이고 못으로 인형을 찌른다.
세번째, 부적과 인형을 불에 태워 버린다.


나는 언제 저주 의식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오늘을 디데이로 정했다.


회사에 체육 행사가 있어서 11시까지만 출근하면 됐기에 아침에 적당한 장소를 들러 저주 의식을 실행하고 출근하기로 했다. 내가 정한 저주 장소는 김포 아라뱃길이다. 여기는 내가 가끔 답답할 때 바람을 쐬러 가는 곳이다. 그 곳에는 강물이 있고 그리고 공터가 있다. 아침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저주 의식을 실행하고 못이 꽂힌 인형을 그 공터에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그곳에 도착해서 저주 인형을 꺼냈다. 그리고 노란 부적 뒤에 이름 세 글자를 적었다. 요즘 내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을 가장 불러일으키는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말이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썼다. 그의 영혼을 이 노란 부적에 담고 싶었다.


이제 그 이름이 써진 노란 부적을 세번 접어서 인형의 가슴 위에 놓았다. 그리고 못 1개를 집어 들었다. 망설임 없이 못으로 부적과 인형의 몸통을 찔렀다. 푸우욱하고 못이 들어갔다. 또다른 못 한개를 집어, 오른쪽 팔를 찔렀다. 마지막 남은 못을 집어 왼쪽 팔에 찔러 넣었다.

통쾌하다


이제 부적만 떼어냈다. 그리고, 부적에 불을 붙였다. 부적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부적에 적힌 이름 세 글자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부적은 회색 빛의 재만 남긴 채 사라졌다


이제 못이 박힌 저주 인형을 공터에 내 던질 차례다.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을 하고 저주 인형을 공터에 던져 넣었다. 그 공터는 잡초가 우거져서 바닥이 보이지 않지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잡초 사이에 떨어졌다. 이렇게 저주 세리모니는 끝났다.





3. 찌를수록 시원하고, 태우니까 가벼워졌다.


저주 의식을 하면서, 내 마음속 시꺼먼 분노와 미움을 하나씩 하나씩 손으로 끄집어내 동그랗게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밀가루 반죽 하듯이 꾹꾹 눌러서 저주인형에 붙였다. 저주인형 위에 덧 붙여진 검은색 분노와 미움을 못으로 찔렀고, 그것을 내 몸 밖으로 던져버렸다.


오컬트의 세계에선 감정을 물질로 옮겨놓고 다루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야 감정이 막연한 안개처럼 흘러다니지 않고, 손에 쥐고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저주 인형은 내 분노를 담는 그릇이었고, 못은 내 억눌린 감정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속 그 인간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뽑아내 버렸다. 나는 이제 그 인간에 대해서 관심을 끊는다. 내 일도 아닌데 굳이 내가 신경을 써서 스트레스 받을 이유는 없다. 그들의 능력이 안 되는 걸 어찌하겠는가, 그것을 내가 커버해 줄 수 있는가?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일만 할 뿐이다. 나는 전체를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어설픈 빵 차장의 회사 생활 원칙이다.


이런 내 태도에 대해 로열티 높은 직딩들은 지적질할 지도 모른다. 모두 힘을 모아 회사가 잘 되도록 노력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자기 일만 하면 전체 일이 되겠냐고 말이다.


그러나, 내 이런 태도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 면죄부도 있다. 바로 그것이 뭐냐하면, <7 Habits>에 나오는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이다. 내가 관심은 있지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라는 말이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언제나 '관심의 원'에 비해 '영향력의 원'은 더 작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내 영향력은 보잘 것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나 하나'에 불과하다. 즉, 회사에 사오정, 덤 앤 더머가 있지만 내가 그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내가 팀장도 아닌 그냥 직원인데, 그들이 내 말을 듣겠는가? 그들은 사오정인 상태로, 덤 앤 더머인 상태로 살아오면서, 여기서 쫓겨나고 저기서 쫓겨나서 지금 여기에 온 셈이니까 말이다.





4. 저주는 핑계, 진짜는 내 마음 구하기 프로젝트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저주 인형 너무 무서운 거 아니야?”라고.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것은 내 안에 쌓이는 분노다. 매일 아침 분노가 깃든 얼굴로 출근해서, '화이어'라고 불을 내뿜는 내 모습 말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저주를 퍼 부으려고 저주 인형을 샀다. 그런데, 저주 의식을 하니까. 이상하게 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내 안에 있던 분노와 미움의 저주가 내 몸에서 쑥 빠져나간 느낌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분노가 희뿌연 연기로 날아가듯 사라지는 그 순간, 묘하게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그렇다. 저주 인형은 저주와 복수의 물건이 아닌 셈이다. 그건 내 감정을 안전하게 해소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처럼 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뻥 뚤힌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오컬트의 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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