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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패스의 달인 팀장입니다.

[좋은 사람인데 오피스 빌런이 되다 #11]

by 감자댄서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의 중심이자, 정보의 통로이자, 전달의 장인,

바로 패스의 달인 팀장입니다.


제가 일을 어떻게 하냐고요?

간단합니다.

위에서 시키면 아래로, 아래에서 올리면 위로.

저는 그 사이에서 한 글자도 더하지 않고, 한 단어도 빼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정확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입니까.




1. 나의 철학: “내 생각은 조직의 혼란을 부른다”


팀장이 됐다는 건, 이제 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죠.

윗분의 말씀이 곧 제 생각입니다.

사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헷갈리니까요.


가끔 팀원들이 묻습니다.


“팀장님, 이번 프로젝트 방향은 어떻게 갈까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건 임원님 의중을 들어봐야 알지.”


이 얼마나 현명한 답변입니까?

괜히 제 의견 냈다가 틀리면 책임이 생기잖아요.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의 효율적 분산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2. 나의 업무 스타일: “적극적 방관주의”


저는 팀원들에게 자율을 보장합니다.

보고서를 가져오면 저는 자세히 보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는 신뢰의 리더십을 믿거든요.

보고서를 끝까지 안 읽는 건 팀원을 믿는다는 뜻이죠.


대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네. 임원님께 한 번 보여드려.”


팀원들은 불안해하지만, 그건 경험이 부족해서 그래요.

저는 임원님의 취향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하는 실전 교육자입니다.





3. 나의 장점: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완벽해진다”


사람은 판단할수록 실수합니다.

저는 그걸 알고 판단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틀리지 않아요.

왜냐면, 아무 결정도 안 하니까요.


가끔 임원님이 화를 내시죠.


"이건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그럴 때 저는 침착하게 말합니다.


"팀원들이 자율적으로 한 겁니다.”


팀장으로서 팀원의 성장 기회를 지켜주는 것,

그게 진짜 리더십 아닙니까?





4. 나의 커뮤니케이션 비법: “짧고, 무색무취하게”


메일에 불필요한 감정은 넣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이렇게 씁니다.


"참고 바랍니다.”

"공유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단 세 줄 안에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때로 팀원들은 “팀장님, 의견이 없으세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하죠.


“나는 의견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봐.”

(물론 그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요.)







5. 나의 자기 인식: “나는 중립이자, 완충이자, 무(無)이다”


저는 조직의 톱니바퀴입니다.

회전하되, 제자리에 있습니다.

움직이지만, 변하지 않습니다.


팀장이 된 이후 저는 깨달았어요.

“생각이 많을수록 피곤해진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원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전달하죠. 그러면 하루가 평화롭습니다.





6. 팀원들에게 한마디


여러분,

팀장이란 건 말이죠…

조직의 ‘패스 라인’을 막지 않고 흐르게 하는 존재예요.


저는 내가 방향을 정하지 않는 걸 겸손이라 부릅니다.

여러분은 그런 저를 보며 성장할 겁니다.

왜냐면 —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라는 강렬한 교훈을 얻을 테니까요.




7. 에필로그: 무능은 죄가 아니다. 스타일이다.


누군가는 제게 무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단지 효율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게 바로 나의 리더십,

패스의 달인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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