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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내포한 생각의 지도

by Yong

영어는 왜 결론부터 말하는가: 언어가 숨기고 있는 생각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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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의점에서 일하며 외국인 손님들을 응대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 제품엔 돼지고기가 없습니다"라는 간단한 문장을 영어로 표현할 때조차, "This product contains no pork"와 "This product does not contain pork" 사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고민하게 된다. 이 작은 고민은 나를 언어라는 거대한 세계,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각기 다른 생각의 지도를 탐험하게 만들었다.


1:1 매칭의 함정, 그리고 비문(非文)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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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외국어를 배울 때 단어를 1:1로 대응시켜 문장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대부분 어색한 비문(非文)으로 끝난다. "피곤해서, 그래서 안 갔다(Because I was tired, so I didn't go)"처럼 한국어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문장은 문법적으로도 틀렸을 뿐만 아니라, 영어 원어민에게는 매우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이것은 단순히 문법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각 나라의 언어는 고유의 사고방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담고 있다. 영작 과제를 할 때마다 우리가 절감하는 것은, 두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번역 불가능성'의 벽이다. 1:1로 매칭되지 않는 그 간극이야말로, 언어 장벽의 본질이다.


결론부터 말하는 영어, 맥락부터 쌓는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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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한국어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결론'의 위치다. 영어는 두괄식 언어다. "누가 무엇을 했다"는 결론을 문장 서두에 던져놓고, 그 이유나 부연 설명을 뒤에 붙인다. 그래서 영어에는 주어가 없는 문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비가 온다(It rains)"나 "재미있다(It is fun)"처럼, 의미 없는 가주어 'it'이라도 내세워 문장의 형식을 맞춰야 한다.


반면 한국어는 미괄식 언어다. 우리는 배경과 상황, 감정의 맥락을 충분히 쌓아 올린 뒤, 마지막에 가서야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린다. 이 차이 때문에 우리는 영어의 가주어-진주어 구문이나 복잡한 관계사, 접속사를 유독 난해하게 느낀다.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결론을 나중에 말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법의 오해: 겸손인가, 나르시시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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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언어 구조의 차이는 때로 심각한 문화적 오해를 낳는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실수했을 때 "사실 제가 원래 이런 걸 잘 못하는 편이라…"라며 서두에 늘어놓는 완곡한 표현은, 결론부터 듣고 싶어 하는 서양인들에게는 '핑계'나 '책임 회피'처럼 들릴 수 있다. 우리의 겸손이 그들에게는 자기중심적인 변명, 심하면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영어식의 직설적인 화법은 우리에게 무례하거나 자기 과시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남들보다 이걸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I'm confident that I can do it better than most people)"라는 표현은, 영어권에서는 긍정적인 자기 확신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한국에서는 '자뻑'이나 '건방짐'으로 비칠 수 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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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각 언어는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의 용언(동사, 형용사) 활용은 원어민조차 그 미묘한 뉘앙스를 다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섬세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담고 있다. 반면 중국어는 한두 글자의 함축적인 시어(詩語) 속에 거대한 풍경과 철학을 담아낸다. 이런 언어의 고유성을 무시한 채 1:1로 번역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번역은 단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가진 생각의 지도를 통째로 재구성하는 창조의 과정에 가깝다.


편의점 카운터에서 시작된 작은 영어 표현에 대한 고민은, 나를 이처럼 깊은 사유로 이끌었다. 언어의 장벽이란 단순히 단어와 문법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관과 사고방식의 충돌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이 거대한 언어의 바다를 건너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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