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PC주의)과 감성적 정의를 앞세운 이상주의적 정책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폐해는, 실무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로 다가온다.
몇년 전 4급 국가직 공무원인 지인이 나에게 토로한적이 있다, 실무자인 그는 이런 현상으로 인한 에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무리 "이 정책은 현실상 실행하기 어렵다"고 반대해도, 상부에서는 "이게 정의고 이게 선이다"라는 도덕적 슬로건을 앞세워 밀어붙인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굳이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이상 반대할 수 없고, 결국 억지로 이행된 정책의 결과는 늘 난장판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위험한 이유는, 진정한 혜택이 돌아가야 할 이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자격 없는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적 모순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주의가 완벽하지 않으며 전통적 시장주의가 가진 문제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장주의가 적용되어야 할 영역에 '사람이 우선' 같은 PC적인 감성 요소가 과도하게 침투한 현시대의 흐름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 관점의 차이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갈등의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슬로건의 위험성은, 이 명제가 모두에게 적용될 때 '그럼 사람들 중에 누가 우선이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이 슬로건에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당장 배송이나 배달이 몇 배 늦어지면 불편을 호소하며 난리를 칠 것이다. '기사님들이 힘들어서 배달이 늦어도 된다'고 말로는 쉽지만, 그 불편이 곧 '나'에게 적용될 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문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건전한 담론 자체를 PC적인 사회에서는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한 슬로건 아래, 현실의 고통과 실무적 난제는 감히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주제가 된다.
이러한 이상론의 위험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바로 교육 현장의 '자유학년제'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수년간 수많은 아이들의 학습 기회를 박탈한 제도였다.
자유학년제는 중학교 1학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진로 적성 교육을 통해 '꿈을 찾게 한다'는 허울 좋은 목표로 시작되었다. 현장의 교사와 사교육 종사자들은 초반부터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선과 정의'라는 슬로건 아래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고등 과정에서는 입시 반발이 심할 것을 알기에 적용하지 못했던 제도다.
가장 큰 문제는 입시 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성적으로 대학이 결정되는 현 제도에서, 중학교 과정 초반에 진로 적성 교육을 위해 교과 학습을 등한시하게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구조였다.
자유학년제의 실질적인 모습은 보여주기식 직업 체험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원하는 체험을 인원 제한으로 가위바위보로 정해야 했고, 실질적인 진로 탐색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안 그래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아이들은 중학교 과정 초반에 적응해야 할 시기에 학습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이는 중학교 2학년 과정의 학습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는 현재 학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실제 학교 일선에서는 한 학기에 나가야 할 필수 단원이 5개라면, 학기말에 3단원도 채 못 끝내고 남은 2주 만에 2개 단원을 후다닥 진도를 빼는 상황이 일상이었다. 결국 학원이나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최상위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성적 경쟁 구도에서 강제로 도태된 제도였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은근슬쩍 자유학년제 적용을 학교장 재량으로 넘겼다. 사실상 실패한 제도를 폐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력 저하를 겪은 현장의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자신의 교육적 신념과 선만을 내세워 수년간 수많은 아이들의 기회를 박탈한 제도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교육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학력 중간 성적층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쓸데없는 시제 측정이 안 되고 형평성에 큰 문제가 있는 '과정 중심' 같은 이상론을 그만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적순이 오히려 훨씬 공정하다.
수능은 여전히 가장 공정한 시험이다. 수능이 사교육의 온상이라는 주장으로 수시 제도가 생겼지만, 오히려 수시의 기준이 학교별 내신 성적 자체의 중구난방식 편차 때문에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결국, 감성적 정의나 이상적인 슬로건이 실무와 현장을 무시하고 작동할 때, 그 피해는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이들, 그리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다수에게 돌아온다. 현실은 '사람이 우선'라는 감성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냉정한 실무, 예측 가능한 시스템, 그리고 공정하게 측정 가능한 기준으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