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투우장에서 상처 입은 소가 숨을 고르는 그 자리처럼,
우리에게도 각자의 퀘렌시아가 필요하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주 마음이 닳아갈수록
나는 나만의 피난처를 떠올린다.
운동으로
몸의 숨을 되찾을 때,
책 속 한 문장이
마음을 건드릴 때,
엉켜 있던 생각들을
글로 풀어낼 때.
그 순간,
나는 나에게로 돌아온다.
위스키 한 잔의 뜨거움,
계절을 느끼며 걷는 길,
아무 목적 없이 처음 도착한 버스에 올라
낯설게 바라보던 오래된 풍경.
그곳이 바로
나의 퀘렌시아였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그의 연인 카말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 속에 조용한 은신처가 있어
어느 때고 그 속에 들어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점도 나와 똑같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불과 몇 안 되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마음을 쓰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잠시라도
내 안의 은신처로 돌아오는 그 시간이 있기에—
나는 다시
나로 숨을 쉰다.
이전 발행글이지만, 〈책으로부터, 나에게로〉의 흐름과 닿아 있어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