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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불안은 고장 나지 않았다

불안을 잠재우는 대신 에너지로 쓰는 기술

by 하레온

불안, 내 안의 오래된 경보음


일요일 저녁, 어김없이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나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밤새 뒤척이거나, ‘띵-’ 하고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하나에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은요. 우리는 불안을 그림자처럼 달고 삽니다. 불안은 불쑥 찾아와 우리의 평온을 깨뜨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속삭이며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싸우는 데 익숙합니다. 불안을 없애야 할 적,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처럼 여기며 애써 외면하고, 억누르고, 잠재우려 노력하죠.


하지만 한번 생각해볼까요. 이토록 끈질기게 우리 곁을 맴도는 불안은, 정말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만약 불안이 우리를 해치려는 적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려는 가장 필사적인 아군이라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는 시끄럽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화재경보기를 꺼버리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질문, ‘불안은 언제부터 우리의 적이 되었을까?’라는 의심에서 시작합니다. 불안을 제거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혼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간절한 신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의 가장 오래된 경보음에 함께 귀 기울여보는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1부: 우리는 어쩌다 불안과 싸우게 되었나

Whisk_89a97d1978347ee998043cd9dcad92b1dr.jpeg 현대인의 그림자가 창을 든 원시인으로 표현되어 불안의 진화적 기원을 상징하는 미니멀한 흑백 이미지.


1장. 나를 지키기 위한 진화의 선물, 불안


아득한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초원을 거닐던 때를 상상해 봅시다. 멀리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몸의 근육이 긴장했던 개체와, 그 소리를 무시하고 태평하게 풀을 뜯던 개체 중 누가 살아남았을까요? 당연히 전자입니다. 위험을 감지하고 ‘싸우거나 도망칠(Fight-or-Flight)’ 준비를 했던 조상들의 예민함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불안’이라 부르는 감각의 원형입니다.


불안은 인류의 기나긴 생존 역사 속에서 정교하게 설계된 최고의 ‘생존 소프트웨어’였습니다. 뇌 깊숙한 곳의 편도체라는 경보 시스템은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즉시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우리 몸을 전투 태세로 전환시킵니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흡이 가빠지며, 모든 에너지를 근육으로 보내는 이 모든 과정은 잠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한 지극히 효율적인 반응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뇌가 회의실에 들어서는 부장님과 초원에서 마주친 맹수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생존 소프트웨어는 그대로인데,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게 변해버렸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목숨을 위협받지 않지만, 이메일 답장 하나, 타인의 말 한마디에 생존의 위협과 맞먹는 수준의 불안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니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불안은 고장 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너무 민감하고, 너무 자주 울릴 뿐입니다. 나를 지키려는 오랜 본능이 현대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2장.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자유의 어지럼증’


불안을 생존 본능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합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어지럼증’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표현했습니다. 아찔한 절벽 끝에 서서 저 아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현기증, 그것이 바로 불안이라는 것이죠.


우리 앞에는 무한한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이직을 할 수도, 창업을 할 수도, 다른 나라로 떠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 혹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이것이 불안의 실존적 본질입니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 또한 “불안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라 말하며, 불안이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경험임을 강조했습니다. 불안하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안주하지 않았다는, 당신 앞에 선택할 미래가 펼쳐져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불안하지 않다면, 어쩌면 당신의 삶에 더 이상 선택할 자유나 새로운 가능성이 남아있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불안은 우리가 피해야 할 저주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로서 감당해야 할 숙명이자 특권인 셈입니다.




2부: 불안 산업의 시대

Whisk_a0923b5064d7e018a3345e5d141e0e58dr.jpeg 수많은 스마트폰 화면에 둘러싸여 고립된 사람의 모습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이미지.


3장.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사회


그렇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생존 신호이자 자유의 증거인 불안은 어쩌다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의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우리는 타인의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순간들과 나의 초라한 현실을 비교하게 됩니다. ‘나만 뒤처지고 있어’, ‘다들 저렇게 잘 사는데…’라는 생각은 만성적인 불안과 조바심을 낳습니다.


직장에서는 과정보다 결과를, 협력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성과주의 문화가 우리를 옥죄입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에 대한 압박,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우리의 불안 시스템을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간헐적으로 울려야 할 경보음이 24시간 내내 윙윙거리는 소음이 되어버린 세상. 이 사회에서 불안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요? 당신의 불안은 당신이 유별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감각을 가졌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4장. 불안을 팔아 이익을 얻는 자들


이렇게 증폭된 불안은 거대한 시장을 만듭니다. 우리는 이른바 ‘불안 산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우리의 결핍을 자극합니다. ‘이것을 사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메시지들은 교묘하게 우리의 불안을 파고들어 지갑을 열게 만듭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전 세계 명상 앱 시장의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불안을 잠재우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거대한 돈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수많은 연구 결과는 스마트폰의 쉴 새 없는 푸시 알림이 우리 뇌를 항상 각성 상태로 만들어 불안과 스트레스 수준을 현저히 높인다고 경고합니다.


기술과 미디어, 상업주의는 ‘불안은 나쁜 것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며 이익을 얻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불안의 주인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불안에 휘둘리며 계속해서 그들의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으로 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거대한 산업의 논리에서 벗어나, 내 불안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3부: 불안의 주인이 되는 삶

Whisk_2215403db9ae2e9b0a947377350c4c16dr.jpeg 내면의 신호를 상징하는 작은 신호등을 손에 들고 불안을 스스로 통제하는 모습을 표현한 감성적인 이미지.


5장. 내 안의 신호등 읽기: 불안 사용 설명서


불안과 싸우기를 멈추고, 불안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신호를 올바르게 읽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불안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 덩어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데이터입니다. 당신의 불안을 내면의 신호등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빨간불(멈춤 신호)은 지금 나의 중요한 가치나 신념이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부당한 대우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불안은 ‘나의 존중받을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시몬 바일스가 올림픽을 기권하며 보여주었듯, 때로는 압도적인 불안 앞에서 멈춰 서는 용기가 자신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노란불(주의 신호)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불안하다면, ‘발표 자료를 한 번 더 점검하고 연습하라’는 내면의 조언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불안을 에너지 삼아 최악의 상황에 철저히 대비했던 것처럼, 노란불은 우리를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만듭니다.


초록불(출발 신호)은 지금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때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관계 앞에서 느끼는 설렘 섞인 불안은, 그 일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출발 신호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자유의 어지럼증’을 느끼며, 기꺼이 그 길로 발을 내디딜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6장. 불안을 에너지로 바꾸는 구체적 기술


내 안의 신호를 읽었다면, 이제 그 에너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킬 구체적인 도구가 필요합니다. 복잡한 이론이 아닌, 지금 당장 당신의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입니다.


첫째, ‘인지 재구성’입니다. “나는 실패할 거야”라는 자동적 생각에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분명 배우는 게 있을 거야”라고 의식적으로 반박해보는 것입니다. 생각의 틀을 바꾸면 감정의 색깔도 바뀝니다.


둘째, ‘불안 관찰 일지’를 써보는 것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지, 그때 어떤 신체 반응이 나타나는지 기록하다 보면 막연했던 불안의 패턴과 실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가장 급하고 강력한 불안의 파도가 덮칠 때는, 긴급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를 위해 ‘3분 불안 리셋 루틴’을 제안합니다.


[3분 불안 리셋 루틴]


[1분] 호흡으로 돌아오기: 눈을 감고 오직 숨에만 집중합니다. 코로 4초간 들이마시고, 7초간 잠시 멈춘 뒤, 입으로 8초간 천천히 내뱉습니다.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1분] 감각으로 관찰하기: 지금 느껴지는 감각 하나에만 집중합니다. ‘손끝이 차갑다’,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커피 향이 난다’ 등. 불안한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붙잡아 둡니다.


[1분] 한 문장으로 명명하기: 지금 느끼는 불안에 이름을 붙여 한 문장으로 되뇌어 봅니다. 예: “나는 지금 회의 결과가 잘못될까 봐 불안하다.” 막연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통제감이 생깁니다.




에필로그: 가장 예민한 신호와 함께 춤을


불안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생 함께해야 할 파트너와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발이 엉키고, 때로는 스텝이 맞지 않아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춤을 추는 법을 익히면, 우리는 더 이상 파트너를 밀어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그의 리드에 몸을 맡기거나, 때로는 내가 먼저 리드하며 더 풍성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죠.


이 글을 덮은 후에도 불안은 여전히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그 불안이 단순한 불청객이 아님을 압니다. 그것은 당신을 지키려는 오랜 친구의 목소리이자, 당신의 삶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당신의 불안은 잠재워야 할 소음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노래를 이루는 가장 낮은음자리표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 귀를 막지 마세요. 가만히 귀 기울여 보세요. 당신의 리듬에 맞춰, 세상에 하나뿐인 춤이 곧 시작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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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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