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충동과 창조 본능의 공존
데이다라는 언제나 '순간의 예술'을 외쳤다.
그의 예술은 점토로 생명을 만들고,
그것을 폭발시킴으로써 완성된다.
그는 파괴의 찰나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여겼다.
데이다라가 순간을 예술의 본질로 삼은 이유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심리적 절규에 가까웠다.
데이다라의 예술은
'영원한 예술'을 신봉한 사소리의 철학과 대조적이다.
사소리가 시간을 멈추려 했다면,
데이다라는 시간을 폭발시켜
찰나의 해방을 느끼려 했다.
그에게 영원은 감옥이었고, 순간은 자유였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데이다라의 철학은
덧없음의 미학(ephemeral aesthetics)에 해당한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그 이유는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감각을 통해만
자신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존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본능을
로고테라피(logotherapy)로 설명했다.
데이다라의 예술은 그에게 의미의 원천이었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수록,
그는 더 격렬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폭발의 순간은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강렬한 자기 확신의 표현이었다.
그는 예술이 끝없이 남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한순간에 사라짐으로써,
그 시간만큼은 완전히
'자기 통제 아래 존재하는 세계'로 만들고자 했다.
그 찰나는,
삶 전체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에
죽음충동(Thanatos)이 존재한다고 했다.
데이다라의 폭발 예술은
그 충동을 창조적 행위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파괴를 통해서만 창조를 완성했고,
소멸을 통해서만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는 점토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생명을 자신이 정한 순간에 사라지게 한다.
데이다라의 예술은
삶과 죽음을 모두 조율하려는 시도다.
이는 자기 세계를 완전히 통제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었다.
우리도 데이다라처럼,
무언가를 오래 남기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순간에 집착하면,
지속의 의미를 잃고
끝없이 '다음 폭발'을 찾아 헤매게 된다.
마음건강은
순간의 열정과 지속의 의미 사이의 균형에 있다.
데이다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쫓았지만,
그 순간이 사라진 뒤 남는 공허함을 채우지 못했다.
그의 예술은 자유로웠지만,
그 자유는 늘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데이다라가 마지막까지 외친
"예술은 폭발이다"는 말은
사실 "나는 지금 존재한다"는 불안한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