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독서모임 사람들과 영덕 도서관에서
즉흥적으로 책을 골라서 읽었다.
내가 고른 책은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라는 제목의 책이다.
제목이 직관적으로 찔리고 와닿아서 골랐다.
이 책의 첫 번째 파트는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지금은 나 하나도 키우기 힘들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핵심인 것 같았다.
글쓴이가 말하는 내용과 이 책의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해 봤다.
글쓴이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글쓴이 자신 하나도 키우기 힘든 현실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고로, 지금은 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니까.
사랑과 책임에 대한 내용을 고양이를 통해서 풀어낸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를 많이 사랑했지만, 그 말에 책임질 수 없기에,
감히 사랑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과한 사람이지만, 그는 더 과했다.
그 점에 동질감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싶었다.
논리로는 그 사람을 이해했지만, 감정으로는 납득이 안 갔다.
사랑 앞에서 그는 비겁할 정도로 독했으니까.
나는 사랑을 택했고, 그는 현실을 택했다.
어떤 선택이 진짜 현명함이었는지.
당시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부족한 능력치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
그 답을 지금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편의상 먼저 좋아한 사람을 A, 다음에 좋아한 사람을 B라고 하겠다.
B는 A와 달리,
결정적인 순간마다 급발진을 시전 했다.
A와 다른 의미로 어떻게 저러지? 싶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책임지려고 저럴까?
끝에는, 어떻게 수습하려고 저럴까?
설레기도 했고, 밉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다.
결국 그는 말과 행동을 수습하지 못했다.
책임지지 못했지.
B는 그저 비겁한 사람이 아니다.
가장 솔직했을 뿐이다.
자신의 감정에, 순간의 욕망에, 도망치고 싶은 본능에.
본질적으로 보면 그렇다.
B가 내 안에서 A를 이긴 이유였다.
A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정말로 다르긴 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직은 그마저도 사랑할 뿐.
지금은 그냥 이 감정을 즐기려고요.
이 글은 철저하게 나를 위한 글이다.
A는 독했다.
너무 독해서, 자신을 혐오하면서까지 자존을 지켰다.
차라리 사랑을 잃으면 잃었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은 되기 싫었던 거지.
작아지기 싫었던 거다.
하지만 그 대가로 너는 정말로 너를 지켰니?
나는 이렇게 생각해.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결국 진짜 나를 잃어.
사랑한다는 말에 책임질 수 없어서,
그 말을 끝까지 속으로 묻었다는 것을 알아.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네가 직면하기 싫어서.
나약함을 나에게 들키기 싫어서.
나를 탓할 수도 없었을 거야.
나는 너무나도 분명히 사랑을 택해버렸으니까.
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게 정말 너를 지킨 걸까?
너는 현실을 지켰지만, 자신은 지키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은 지키지는 못했으니까.
감정에 책임지지 못했으니까.
내 감정에 책임지지 못하면,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기 힘들다.
여기서 말하는 정체성이란,
자기 자아에 대한 내적 믿음이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융 분석 심리학에서 자아와 정체성은 분리되면서도 연결된 개념이다.
이 믿음이 무너질 때, 진짜 '나'도 함께 흔들린다.
이 믿음은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질 때 유지된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면,
결국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되는 거다.
감정에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인식하고, 이름 붙이는 거다. 기만하지 않는 거다.
표현하고,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래야 내 마음의 진짜 주인이 내가 될 수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다.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계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서웠겠지.
나도 그게 무서워서, 나를 속이려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감정은 누른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아.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정체성으로 통합된다.
정체성으로 통합된 감정은 그림자가 된다.
그림자는, 직면하지 못한 감정이 무의식 속에 남아 나를 조종하는 힘이다.
융에 따르면, 이 그림자는 나의 ‘의식적 자아’가 받아들이지 못한 모든 것들의 총합이다.
억눌린 감정, 수치, 분노, 두려움 그것들이 무의식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흔든다.
그림자는 새로운 시작을 방해한다.
계속 나의 눈을 가리거든.
새로운 대상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게 한다.
계속해서 이전 관계를 투사하게 되지.
투사란, 내 마음속 상처나 두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다.
결국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패턴을 해제하려면, 내 안의 그림자를 인식해야 한다.
그림자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되는 감정을 직면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당시 그가 현실을 대가로 버린 것은, 그저 나를 향한 사랑만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앞으로의 사랑을 함께 내다 버린 것이다.
감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힘들지만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그러니까.
누구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