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 한 교육의 폐혀로 인해 지쳐가는 한 청소년의 암담한 이야기
이 책의 서사는 그리 재밌지 않다. 또한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엇이 이 책을 독자들에게 감명 줄까? 나는 고민해봤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헤르만 헤세의 수작 『수레바퀴 아래서』이다.『데미안』,『싯다르타』와는 다르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스토리의 서사 만큼은 두 걸작만큼 충분히 비견 될수 있을 정도로 작가가 풀어내는 내용은 지금 겪고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정면으로 일러준다. 이 책에는 긍정과 희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한스는 공부와 학교만으로 치우쳐진 생활으로 쭉 일생을 이어나가고, 그안의 전개에서는 이 지독한 터널을 타개할 수 있거나 무마 할 수 있는 다른 분출구, 옆길이 보이지 않는다. 초반, 그의 잠재적인 공부 재능은 점점 기계적인 학습과 타율적인 공부 방식으로 인해 점점 내면이 쓰러져간다. 이는 마치 힘차고 거세게 흘러내리는 파도가 점점 약해지고 가라앉지는 것과 같이, 한 인간의 도태되는 마음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신학교에 들어가며 한스는 자신조차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맨홀으로 빠져버렸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하며 따라간다. 그는 괴로워하는 것 조차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내리는 종이 조각 처럼 무의미와 허무에 빠져든다. 상실감에 젖지도 않은채 그저 위축된채로 방황한다. 이중 한스의 얼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들
"한데 그가 (교장) 위풍당당하게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아도 기벤라트는 언제나 비굴하게 약간 얼빠진 웃음을 지을 뿐이었으므로 화가 벌컥 치밀었다."
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처량하게 실성한채 웃는 한스 기벤라트의 모습을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끔직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저 처참해져 갈 뿐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런 극단적인 공허함을 뜻깊게 묘사했으며, 줄거리에서 보여지는 한스가 겪는 이러한 식상한 과정들과는 다르게 헤세의 이 깊숙한 마음은, 인간의 내면의 실연, 허무함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무감각을 선물했다. 한스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작중 흘러내리는 말들이 온갖 괴상한 학교일들에 휩싸여진채 주변이 소용돌이 치듯 말들이 폭풍우처럼 다가온다.
작중에서 한스는 신학교를 떠나버린다. 신경쇠약에 걸린 채 쓸쓸히 실연에 빠진채 지난날 과거들을 회상해 온다. 그중에서는 좋은 기억들, 잔인하고 끔찍했던 경험, 어린 시절 특유의 행복감과 그것이 점차 사라져 가는 서사는 우리에게도 있었을 아련한 어렸을적 추억들을 불러 일으키기좋다. 행복한 감상에 젖어 있는 와중, 그는 예전 마울브론에 있었던 여자 아이 한명을 다시 만난다. 할 것이 없었는지 돌아온 그 도시에서 압착장에 끌려오게되어 과즙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때 만난, 소개 할 여자가 있다고 구두장 플라이크씨는 자신의 조카를 소개해온다. 그녀의 이름은 엠마. 어릴적 한스가 짝사랑했던 여자이다.
한스의 마음 상태를 설명해주는 말들이 마치 고결한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굉장히 생동감을 문장 한 구석에서 느낄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얼굴에 그리는 듯 서사의 진정성을 우리에게 표상해준다. 하나 하나 읆어가며 구석 구석읽으면 이 또한 이렇게 감미로울 수 가 있나 싶다. 단순히 지루한 스토리 플롯에서 그치지 않고 초반과는 매우 다르게 작가의 표현력이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엠마는 한스의 윤체적 촉감만을 원한다. 그렇기에 한스가 엠마를 만나 다시 그녀에게 사모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일종의 놀이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만 헤세는 한스와 그녀가 같이 있는 시간을 이상적으로 매우 선선한 바람이 부듯 따듯하고 부드럽게 그려냈는데, 이는 그녀의 진실된 마음과는 대조되는 면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한스와 엠마가 있는 풍경을 이상적인 시선으로도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추후 한스의 이상은 깨진다. 하지만 이 또한 한스에 의미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실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이 마치 마른 딱풀처럼 무감각해지고 고상해진 것일까.
- 작중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어 이는 고통과 좀처럼 진정될 줄 모르는 사랑의 힘이 뒤엉켜 애달픈 번뇌로 변했다."
"이 번뇌의 채찍질에 못 이겨 그는 집에서 뜰로, 거리로, 숲으로, 다시 집으로 헤매고 다녔다."
그저 여자아이의 짖궃은 장난이었을까? 나는 내 안에서 이 담겨져 있지 않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현실(으)로다가 말이다. 한스에게 마구 키스세례를 퍼부었는 엠마는 단순한 청량미나, 순수함의 사랑이 아닌 과연 조롱이었을까. 미처 작가로부터 모색되지 않은, 담겨 있지 않는 이 사랑의 구절들과 문장들은 뭔지 나를 깊은 고민에 빠져버리게 만든다.
그에게서는 마지막 희망조차인 엠마는, 그에게서 사라진다. 분노와 상실감을 안겨준채.
- 작중
매일 매일 그 얼마나 부질없는 한탄과 실없이 그리워지는 추억과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있었던가.
... 이라고 상실감을 표현한 이 문장은 한스의 허무함의 온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 이 말할 수 없는 비탄함, 정열적인 가시박힌 마음이, 그에게는 갈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이 고독과 외로움을 다 안는다..
7장에서는 한스가 회상을 하고싶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문장들이 곳곳에 배치해있다. 그래서 그것을 음울한 문장들을 위로하는 식으로 중간 사이에 회상하듯이 문장을 넣는다.
- 작중
이는 마치 희망이 설 자리가 있듯이 독자를 지속적으로 끌어오게 하려는 하나의 장치 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초록색 문장은 한스가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는 것을 정면으로 돋보이게 한다. (돋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을 그 흐름 그대로, 파란색 문장들이 띄는 이 흐름 그대로 그냥 이어진다. 참으로 놀랍다.
또한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이 문장이다. 이는 작중 한스가 기계 견습공 공장에서 일하는, 견습공 공장 일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특히나 주인의 기복 때문에 화를 공장장이들에게 지르는 고함소리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작중
토요일은 더욱 나빴다. 두손이 타는듯이 아팠고 커다란 물집이 잡혔다. 주인은 기분이 언짢은지 아주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아 욕을 퍼부었다.
이 소리를 듣자 온몸에 가시가 돋우으둣 머리가 멍해지고 깨끗해졌다. 평소에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 훅 사라졌다.
가끔 문학 작품들을 읽다 보면 영어 문장들이 그리워진다. 유학파 였던 나로서는 옛날 당시 영어 서적 원본이 느껴주는 것을 지금 통감하고, 영어 서적 원본이 훨씬 개요나 서사가 더 자연스럽게 들릴거라고 직접 영어 책을 읽지 않아도
"That's the way, that's the way, my boy." ,
"Just let up or you'll get dragged beneath the wheel."
....이라는 문장 단 한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영어판 원본으로 읽는 것이 매우 추천된다. 아무래도 한국어 특유의 고유한 문장 구성과 형식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줄거리나 서사 흐름이 중간 부분에 이를때, 특히 한스가 신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할때에는 끝없는 지루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앞서 말했듯 한스가 느끼는 끝없는 괴로움이 현실 체감으로 다가와지는 듯하다.
이처럼 이 책의 내용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한국어 원본으로 봐도 느낀점이 충당되지만, 스토리 개요 전체적인 자연스러움 문장 구성 흐름쪽으로 봤을때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영어 문장이 책 줄거리 흐름에 풍미를, 한마디로 이 책의 구절을 하나하나 음미하고 읽는데 큰 흥미를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감히 확언한다. 나도 조만간 이 영어 서적 원본을 읽을 예정이다. 이미 그 지루한 내용을 낱낱이 흘러가며 꼼꼼히 읽었기에 영어 원본 내용이 휠씬 더 많이 기대가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또 보면, 한스에게로부터 깊은 통감을 느낀다. 억압받는 개인은 단순히 윤리와 자유의 사상과는 별개로 생명의 위협이라는 것을, 헤르만 헤세는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암시한다. 이는 단순히 청소년기에 겪는 우울감과 고통으로 인한 자살이 아닌 (엄밀히 말하면 우연히 물에 빠진게 맞긴 맞다), 성취해야된다는 압박감과 가중되는 외부 부담감 (하지만 술에 취해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이 외부압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해버려 죽었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모로서 부터, 인생으로서 부터 맞닥드리는 가중되는 심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부터 인해 '술에 취하기 위해 많이 마신 것 같다' 라고도 볼 수있기 때문이다.) 왜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가둬져야되는가? 이는 단순히 '학교'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외에 말할 수 없는 청소년기의 정신적인 괴로움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이것이 매우 극단적인 사례라고 조차 할 수도 없기에, 나는 매우 안타까워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저번 브런치를 포스팅하고 뭐 비록 조회수가 많진 않았지만 그에 비해 정말 많은 하트를 받은 것 같다. 그 점에 대하여 모든 나의 느낀점을 읽어드린 독자분들과, 관심과 사랑을 준 이들에게 조아려 감사하다. 나에게 주는 의미는 뜻깊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웬 갑자기 진중하게 적고있고 있나 싶지만 앞으로 나에게 포스팅 하는데에서는, '정말 뜻깊은 의미를 지녔다' 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보겠다.
사실 나에게 적는 것의 의미는 내 삶에 있어서 앞으로 읽는 것 조차 지금 만큼이라도 크다고 말해보려고 한다. 항상 쓰고 보면 (내 내용을) 알기에, 영감이 떠오르고 깊이 빠져들 틈과 내 스스로를 빗대어 바라볼 수 있는 독자적인 관점이라는 또 하나의, 아니 여러면의 (내 사실(들)에 대한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하는 가능성들을 제기하기에 앞으로 내 삶에 글쓰기와 창작, 독후감들과 책은 내가 가지는 삶이 의미와 살아가는데 있어 삶의 가치에 크게 적용될 것이다. 글쓰기가 함유하는 내면적 의미가 나의 성장 방향에서 흘러가는 중요한 틀이 되어줄 것이고, 솔직히 말해 저번 내 글쓰기, 독후감·느낀점은 책 내용의 줄거리를 사색하고 그것을 깊게 옮겨 쓰는데에는 부분적으로 많이 빈약했던 것 같다. 또한 문장 흐름 구성들도 자주 단순해져 갈 뿐더러, 어휘력이나 독창성이 조금 부족했다. 무엇보다 이것을 이어가며 끊임없이 발전하며 쓰는 것을 지속해나가는 의미를 빌려 앞으로의 어휘력이나 글쓰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배워(메꿔)나가겠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함께 작성하시는 분들께 깊은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작성함으로서 자리잡는 업로드들은 내게 시작의 뿌리와 내용의 기둥이 되어주며, 그들이 사용하는 표현과 내용은 나에게 큰 작성하는 자양분이 되주기에 이 또한 나는 이 점을 고려해서 다음에는 더 탄탄하게 스토리 내용을 다뤄 볼까 하는 예정이다. '그들'이라고 말해 조금 생뚱맞았지만(?) 알다시피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나 지식, 독후감 등등을 찾아보아 그 지식들을 포함해서 이 책의 전체적 내용을 파악하더러 뿐만 아니라 전체적 스토리 라인 작성 내용을 충당해주는 본보기 역할을 해주기에 모든 글을 쓰시는 (블로그, 브런치 등등) 분들의 작성지 한명한명 읽는 것은 나에게 큰 동기부여이자 생명줄(이 글쓰기를 써갈 수 있는 지속할 수 있는)인 따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문학 독후감을 포함해 문학적·시적인 글을 공유하시는 분들에게 깊은 공감을 전하며 모두에게 이『수레바퀴 아레서』라는 책의 의미는 매우 깊숙하다는 점을 강조 하겠다. 점차 한스 처럼 변해가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긍정의 확언과 (내면적, 언어적이든 간에) 희망의 탈출구를 찾기를 기원하며 오늘은 나의 견해 위주의 작성이 매우 길었던것 같고, 이처럼 새로운 사상을 표현하고 앞으로의 브런치를 작성하는데에 나에게 매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일 것이라고 생각된)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앞으로서의 내 삶에서는 엄청난 행복이 되고, 또 그럴것 이고, 매주가 매우 매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