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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어디로 예약할까요?

밥, 술, 그리고 정치

by 김의겸

“의원님, 모레 오찬 장소는 지난번에 기자들이랑 가셨던 일식집 괜찮으세요?”

이런 말이 있다. 윗사람에게 보고할 일이 있으면 오전 11시보다는 오후 2시가 낫다고. 예민한 식전보다는 여유롭고 나른한 오후가 더 좋다는 것이다. 물론 일이라는 게 식사 여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배고프고 예민할 때 일하는 것보다는 배부른 상태에서 여유를 갖는 게 훨씬 수월하다.


밥과 술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

정치에서 식사와 술자리를 빼놓을 수 없다. 회의에서 별말 없던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며 ‘진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흔하다. 식사는 긴장을 풀어주고, 대화가 끊기는 순간에도 음식이 자연스러운 완충 역할을 한다. 기자들은 ‘꾸미’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치인과 식사·술 약속을 잡고, 기업이나 협회 관계자들은 차 한 잔보다 식사 약속을 더 선호한다. 조찬, 오찬, 만찬은 기본이고, 바쁘면 점심을 두세 번 나누어 먹는 일도 생긴다.


“식당에 혹시 룸 있나요?”

정치권에서 식사는 곧 ‘일’이다. 식당은 치열한 일터이자 전략의 현장이 된다. 그러다 보니 식당 예약은 중요한 업무가 된다.

보좌진들이 모인 단톡방에서는 여의도 맛집 리스트가 한 달에 한 번꼴로 공유된다. 특히 프라이빗 룸이 있는 식당은 항상 1순위 예약 대상이다. 문제는 프라이빗 룸이 있으면서, 맛과 서비스도 괜찮고, 급히 잡힌 일정에 예약 가능성을 모두 충족하는 식당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급히 생긴 일정을 앞두고 보좌진들이 여러 식당에 전화를 돌리며 예약 전쟁을 치르는 풍경도 흔하다.


그놈의 소주·맥주 타령

술 역시 정치와 뗄 수 없는 존재다. 취기가 오르면 경계심이 누그러지고, 취기를 핑계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짧은 식사와 달리 술자리는 2차, 3차로 이어지며 긴 대화를 이끌기에 적합하다.

보통은 소주 1에 맥주 4를 섞은 폭탄주, 그리고 소주와 맥주가 기본이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훌륭한 정치적 ‘스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독이다. 선거철에는 특히 심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매 식사마다 술을 곁들이고, 숙취에 괴로워하다가 다시 낮술로 시작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과 짧은 시간 안에 경계심을 풀고 친밀감을 쌓으려는 의도겠지만, 결국 본인과 주변 모두에게 고통이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마시자

정치는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데이터나 서류만으로는 풀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일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밥을 먹고 술잔을 나누는 일은 필수다. 쌓이는 뚝배기와 초록병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소사가 결정되었을 터다. 식사와 술자리는 정치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다만, 야근이 잦고 스트레스가 많은 정치인과 보좌진들 가운데, 폭식과 폭음으로 피로를 푸는 이들이 많다. 매운·짠·단 고칼로리 음식과 ‘초록병’이 쌓이는 풍경은 흔하다. 도넛, 케이크, 과자 등 갖은 고칼로리 간식들도 항상 정치인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건강은 그만큼 쉽게 해쳐지고, 회복은 더디다.

밥 한 끼, 술 한 잔 하자는 사람은 많아도, “적당히 먹자, 적당히 마시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인과 보좌진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은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마시자. 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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