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진주는 조개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감싸다가 만들어지는 보석이라고 한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통이 되는 것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겹겹이 싸 안아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진주조개처럼 자신들의 눈물과 희생으로 보석 같은 자녀들을 키워낸 어머니들의 이야기.
‘펄’이라는 소녀의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
조선 땅에서의 여인의 삶을 이야기했던 지난번 글에 이어 같은 시기에 이 땅을 떠나 자유와 희망을 찾아 저 멀리 하와이로 떠난 여인들의 이야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를 소개해보려 한다.
의병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몰락한 양반집 딸 버들, 아버지가 양반병이 들어 병약한 양반 사내에게 시집을 보낸 탓에 열여덟에 과부가 된 홍주, 실성한 무당 딸이 아비도 모르는 딸을 낳아 동네를 돌아다니던 탓에 어미와 둘이 동네 사람 모두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던 송화.
제 나라에서는 도저히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는 이 세 여인은 ‘사진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하와이로 떠나는 배에 오른다. 옷과 먹거리와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고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용감하게 고국을 떠난 여인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참혹한 진실을 마주한다.
사진만 보고 중매쟁이의 이야기를 보증 삼아 이역만리 타향에 왔건만 기다리는 건 지주라던 말과 달리 소작을 치는 무뚝뚝한 남편, 노동에 찌든 아버지뻘 할아버지뻘의 남편들이었다.
속았다는 억울함도 잠시, 그녀들은 곧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다. 아니, 필사적으로 살아내기 시작한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낯선 나라, 의지가 되지 않는 식민지 조국, 가난하고 쇠약한 남편들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다 해도 그녀들에게는 고향에서 손잡고 함께 온 친구가 있었기에 버티고 살아낼 수 있었다.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살아 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모으고 셋 중 누구 하나가 쓰러지면 함께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많은 시간 눈물과 땀으로 살아내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상자를 발견하게 되는 ‘펄’. 그녀의 엄마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펄’은 버들과 홍주, 송화의 딸이었으니까.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고귀한 빛을 지닌 진주처럼 그녀들의 ‘펄’은 어머니들의 눈물 속에 태어나고 키워진 귀한 존재였다. 그 ‘딸’은 그녀들의 굴곡진 삶이 만들어낸 ‘보석’이었다. 아픔과 시련을 그대로 자신들 안에서 담아내고 끊임없이 싸안아 만든 고귀한 보석.
자신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이 보석이 이제 세상밖으로 나가 귀한 빛을 발하기를 그녀의 어머니들은 바랬을 것이다. 훨~ 훨~ 그렇게 맘껏 아름다운 춤을 추며 엄마가 이루지 못했던 자유로운 삶을 빛나게 살아가기를…
재미있고 편한 것이 ‘선’이고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은 ‘악’이라는 요즘 세상에 누군가의 희생이 만들어낸 열매에 대한 이 이야기가 많이 읽혀 지길 바란다. 이 소설 속에서 시대상을 읽기보다 어쩐지 희생의 숭고함을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번 주말 친구의 아이를 만나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동물을 좋아해서 아픈 동물을 고쳐주고 싶어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의사’라는 직업보다 ‘동물을 좋아해서 아픈 동물을 고쳐주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기특했다. ‘편하게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아 예쁘고 다행이었다. 아이의 꿈은 앞으로 열두 번도 더 바뀌겠지만 아이의 됨됨이는 지금처럼 반듯하기를 바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꼭 안아주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힘든 일이 닥쳐오고 삶이 때로 고통스러워도 우리 안에 보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아픔과 미움, 증오와 원망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나가길…
기독교는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라는 설교를 지난주에 우연히 들었다. 한동안 어려웠던 나의 마음에도 미움과 원망, 불안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말씀과 사랑’으로 채워주시길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