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는 작은 전자제품의 조각을 맞추는 부업을 시작했다.
남편의 벌이가 들쑥날쑥해서 도저히 살수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자기 자리에 앉아 일을 거들었다.
작은 상에 빙 둘러 앉아,
첫째가, 조각을 맞춰서 옆으로 보내고,
그 다음 조각은 둘째가 맞춰서 또 옆으로 보내,
기계로 찍어서 고정시키는 일은 순이가 했다.
막내는 뒤섞인 조각들은 분류하고,
불량이 있는 조각을 걸러내는 일을 하고있다.
마치 작은 공장처럼,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끝낼 수 있었고,
그 덕에 일감을 또 받아올 수 있었다.
그 돈으로는 반찬거리를 사고, 아이들 육성회비와 학용품을 마련했다.
흑석동은 힘든 기억이 많은 동네였지만,
쉽게 떠날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나마 손을 벌릴 수 있는 시댁이 있었고,
넷째를 낳은 곳이였고,
어려움을 기꺼이 나누려 했던 이웃 여자들이 있었다.
김 공장에서 일하는 이는 포장을 마치고 남은 짜투리 김을 모아 가져다 주었다.
그 때마다, 후남이는 자기 몸통만한 김봉지를 안으며,
곰인형을 안은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동굴에 갖혀도, 김만 있으면 살수 있다는 말을 하곤 했다.
건물 청소를 다니는 이는
화장실 휴지를 교체하며, 심지에 남아있는 휴지를 챙겨다 주었다.
그전까진 달력을 찢어 화장실에 가야 했으니,
아이들은 그때 처음 휴지를 사용해봤다.
부업거리가 떨어지면
다른 부업을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 있었고,
여름철 단수가 되면,
자기 집 수도를 기꺼이 내어주는 이가 있었다.
아이들이 통 하나씩 들고 그 집까지 달려가
물을 길어 오는 일을 몇 번씩 반복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 중에서도 순이가 제일 어렵게 살고있으니,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서로를 보듬은 작은 온기조차 없었다면,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