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견이 답이 되는 사회, AI와 역사 왜곡의 가능성

한푸(漢服) 논쟁을 중심으로

by 채현

I. AI의 편리함 속에 숨은 함정

오늘날 우리는 AI에게 묻는다. “한푸는 전통복장인가?” AI는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답한다. 겉보기에 명쾌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다. AI는 본질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평균화하여 답을 내놓는 기계이다. 가장 많이 언급되고 흔히 쓰이는 설명을 “사실”처럼 제시한다. 그러나 다수의 언어가 곧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정의의 엄밀함을 무너뜨리고, 장기적으로는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II. 전통복장의 정의

전통복장을 정의할 때 학문은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¹.
첫째, 역사적 기원.
둘째, 지속성, 즉 단절 없이 제작과 착용이 이어져야 한다는 점.
셋째, 문화적 실천성. 공동체의 의례나 일상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넷째, 공동체적 합의.
마지막으로 형식과 기능의 전승.

이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엄밀히 “전통복식(傳統服飾)”이라 부를 수 있다.

이 기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일본의 기모노는 이미 일상복의 자리는 잃었지만, 성년식·결혼식·의례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며, 현대 디자이너들이 변형을 통해 새로운 활용을 시도하고 있다. 인도의 사리 역시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면서도 지금도 여성들의 일상복으로 쓰인다. 반면 유럽의 토가나 튜닉은 더 이상 생활 속에서 쓰이지 않고 박물관의 유물로 남았다. 이 비교를 통해 전통복식의 본질은 단순한 역사적 기원만이 아니라, 현재적 실천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III. 한푸는 전통복장인가?

이 정의에 비추어 보면 한푸의 지위는 모호하다. 한푸는 분명 한족(漢族) 문화에서 유래했지만, 청나라 이후 수백 년간 단절되었다. 현대의 한푸는 2000년대 들어 일부 청년층이 고증과 창작을 결합해 복원한 것이다. 제작법·착용법·기능의 전승도 미약하다. 학문적으로는 “역사적 복식의 복원형”일 뿐, 살아 있는 전통복식으로 보기 어렵다.

더욱이 이 복원운동은 단순한 복식 재현을 넘어 정치적·문화적 성격을 띠었다. 청년들은 한푸 착용을 “민족 정체성의 회복”으로 인식했고, 이는 애국주의 및 중화주의 담론과 결합되었다. 다시 말해 한푸는 일상적 전통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반대로 치파오(旗袍)는 청나라 만주족 복식에서 기원해 오늘날까지 변형·계승되며 이어져 왔다. 학교 제복, 항공사 유니폼, 전통 행사복으로 널리 쓰인다. 따라서 치파오는 전통복장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AI는 “한푸는 중국의 전통의상”이라고 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언론·출판·인터넷에서 그렇게 불리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다수의 빈도가 정의를 대신해버린 것이다.



IV. 다수의견이 역사로 굳어지는 과정

이 작은 착오는 시간이 흐르면 거대한 문제가 된다.

언론과 대중이 ‘한푸=전통복식’이라 부른다.

AI가 그것을 학습하여 동일하게 답한다.

사람들은 AI의 답을 다시 인터넷에 기록한다.

반복 속에서 후대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학문적으로는 분명히 단절된 복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중국의 전통복식은 한푸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된다. 이는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다. AI 시대의 역사 왜곡 메커니즘이다.

비슷한 현상은 근현대 정치에서도 나타났다. 2003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주요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다수는 이를 사실로 믿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나중에 정보 조작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다수의견의 반복이 진실을 대체해 역사를 바꿔버린 대표적 사례이다³.



V. 불균형한 힘과 작은 문화의 위기

여기에는 힘의 불균형이 자리한다. 인구 15억의 중국은 한복을 입은 한국보다 30배 많다. 기록의 양도 압도적이다. 시간이 500년쯤 흐르면, 한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한복은 한푸의 변형”이라는 서술이 상식으로 굳어질 수 있다.

더 작은 문화권에서는 상황이 더 절망적이다. 중앙아시아 소수민족의 복식, 태평양 섬 주민들의 의례복, 아프리카 토착 직물문화는 이미 글로벌 미디어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록되지 못한 문화는 AI 학습 자료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다수의 기록이 기준이 되는 순간, 작은 문화는 더욱 쉽게 지워진다².



VI. AI 시대의 역사 책임

따라서 AI 시대에 중요한 과제는 기술 발전 자체가 아니다. 정의와 통념을 엄격히 구분하는 학문적 원칙이 필요하다. 작은 문화의 기록을 디지털로 남기고, 국제 언어로 번역해 확산하는 일도 중요하다.

정책적으로는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 차원에서 “문화 데이터 보존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공적 아카이브와 학술 기관이 협력하여 기록을 남기고, 지역 언어와 전통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기업 역시 AI 학습 데이터에서 특정 지역·언어가 과소대표되지 않도록 점검할 의무를 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AI는 지식의 수호자가 아니라, 강대국의 다수 담론을 영속화하는 보이지 않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VII.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는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기술이지만, 그 답이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수의견이 답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학문적 정의를 잃고 작은 문화는 이름조차 없이 사라질 위험에 처한다. 한푸 논란은 단순한 복식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AI가 역사를 다시 쓰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찬양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낼 역사적 불평등을 직시하는 눈이다.






미주

¹ Joanne Eicher, The Visible Self, 1995.
²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1983.
³ Bob Woodward, Plan of Attack,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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