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예측, 서구적 편향을 거울처럼 비추다.

(대만에서 전쟁이 나면)

by 채현

I. 서구 담론의 재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최근 필자가 제미나이(Gemini)와 나눈 대화에서 흥미로운 답변이 나왔다. 제미나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한반도 위기의 핵심 원인을 북한의 ‘오판’에서 찾았다. 그 이유로는 정보 왜곡, 핵무기에 대한 맹신, 이데올로기적 낙관주의, 과거 벼랑 끝 전술 경험의 착각, 한국 사회에 대한 왜곡된 인식 등 다섯 가지가 제시되었다.

겉으로는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곱씹어 보면 이는 새로운 통찰이라기보다 수십 년간 서구 담론이 북한을 묘사해 온 틀의 반복이다. 북한은 언제나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정보 속에 살며, 핵무기와 이데올로기에 취해 있다는 상투적 이미지 말이다. AI는 학습 데이터 속에 각인된 이 다수 담론을 그대로 재생산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AI의 예측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기존 담론의 반복’이다.



II. 서구 담론의 네 가지 틀

제미나이가 제시한 ‘오판의 이유’는 서구에서 늘 반복된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비합리적 행위자론 (Irrational Actor Thesis)
북한은 합리적 계산 능력이 부족하고 언제든 감정과 왜곡된 정보에 끌려다닌다는 시각이다. ‘정보 왜곡’, ‘핵 맹신’, ‘정신력 강요’가 이에 해당한다.


2. 벼랑 끝 전술 국가론 (Brinkmanship State)
위기를 고조시켜 협상에서 이익을 얻는 “위기 장사꾼”의 이미지이다. ‘과거 벼랑 끝 전술 경험의 착각’이 이 프레임에 속한다.


3. 수령-체제 절대주의 (Totalitarian Cult Thesis)

모든 행동이 지도자 권위와 체제 유지에 종속된다는 설명이다. 북한을 독립적 전략 행위자라기보다 폐쇄적 독재 체제의 산물로 본다.


4. 중국의 꼭두각시론 (Client State Thesis)

북한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중국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국이라는 주장이다. 대만–한반도 위기 시 북한은 ‘중국의 그림자’로만 작동한다는 가정이다.


제미나이의 분석은 결국 이 네 가지 시각을 조합한 것에 불과하다.



III. 다른 가능성: 도발 억제의 선택

문제는 이러한 예측이 너무 당연한 진실처럼 들린다는 데 있다. “북한은 오판하고, 결국 위기를 키울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 즉, 북한이 오히려 도발을 자제하고 위기를 억제하는 선택이다.

중국이 대만과 전면전에 돌입한다면, 북한은 한반도까지 불안정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남북한 충돌이 본격화되면 중국은 양면 전선을 감당해야 하고, 북한 자신도 체제 존립을 위협받는다. 따라서 북한은 오히려 내부 안정을 택하고 상황을 관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소극적 회피가 아니다. 북한의 도발 억제는 체제 생존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합리성에 기초한다. 과거 북한은 긴장을 높이다가도 일정 시점에서 급격히 수위를 낮추고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는 선택을 해왔다. 이는 비합리적 오판이라기보다 계산된 줄타기라 할 수 있다.



IV. 하나의 가능성을 ‘진실’로 포장하는 위험

정리하면, 한반도 시나리오에는 최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AI/서구적 시각: 북한은 오판을 통해 위기를 확대한다.

다른 가능성: 북한은 전략적 합리성에 따라 도발을 억제한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AI는 두 번째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첫 번째 시나리오만을 ‘사실처럼’ 제시한다. 독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릴 기회를 잃는다. AI의 위험은 분석이 반드시 틀려서가 아니라, 가능성의 다양성을 지워버린다는 데 있다.

이 현상은 북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중동 문제를 묻는다면 AI는 이슬람 사회를 곧잘 ‘종교적 극단주의’로 환원한다. 아프리카 분쟁을 설명할 때도 복잡한 자원 문제나 국제 개입을 무시한 채 ‘부족 갈등’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반복한다. 동유럽 국가를 다룰 때는 ‘민주주의 미성숙’이라는 고정관념을 전제한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담론의 반복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일하게 발생한다.



V. 사회적·정치적 위험의 확대

AI가 제시하는 분석이 언론 보도나 정책 담론에 그대로 흡수될 경우, 하나의 시각이 곧 제도화된 진실로 굳어진다. 정치 지도자나 관료가 “AI도 그렇게 분석한다”는 이유로 특정 담론을 강화하면, 다른 가능성은 더욱 배제된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편향이 아니라, 정책 상상력의 축소로 이어진다. 국가 전략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다층적 분석을 필요로 하지만, AI의 반복 담론은 오히려 ‘단일 해석’의 유혹을 강화한다.



VI. 철학적 함의: 언어모델과 담론 권력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언어모델은 본질적으로 “가장 자주 나타난 언어 패턴”을 답으로 제시하는 기계이다. 다수의 언어가 곧 진실처럼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곧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나 아렌트¹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개인의 비판적 사고 부재를 지적했다면, 오늘날 AI는 “편향의 평범성”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킨다. 또한 푸코²가 말한 담론 권력의 구조 속에서, AI는 새로운 권력 주체가 아니라 기존 권력을 강화하는 재생산 장치에 가깝다.



VII. 한국 사회의 극단적 수용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일부는 북한을 몰락 직전 체제로 보고 대만 사태가 곧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다른 일부는 서구 담론 자체를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북한을 과대평가한다. 서로 정반대인 듯 보이지만, 둘 다 북한을 주체적 행위자가 아닌 타자의 시선 속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다.

심지어 ‘적절한 유인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온건론조차, 북한을 외부 조건에 따라 길들여질 수 있는 수동적 존재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서구 담론의 파생형이라 할 수 있다. 강경론·음모론·유인론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북한을 ‘스스로 변화할 수 없는 타자’로만 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VIII. 결론: 비판적 문해력의 요청

결국 중요한 교훈은 명확하다. AI의 분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AI가 주관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특정 담론―특히 서구 시각―에 물든 데이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처럼 복잡한 사안에서 AI의 예측은 하나의 참고일 수는 있으나 결코 중립적 진실이 될 수 없다.

특히 북한 문제에서 AI는 ‘오판과 위기’라는 서사만을 강조하며, 전략적 억제 가능성을 지운다. 그러나 억제 선택은 체제 생존을 위한 합리적 전략일 수 있다. AI가 이를 무시한다는 건 결국 북한을 끝내 비합리적 타자로만 고정하는 서구적 시선을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답변을 소비하는 능력이 아니라, 답변을 해체하는 능력이다. AI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그 뒤에 어떤 담론적 배경과 편향이 숨어 있는지를 읽어내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리터러시(數位素養)의 핵심이며, 우리가 AI를 성찰의 도구로 삼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미주

¹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² Michel Foucault,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1969.
³ Kenneth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1979.
⁴ Bruce Cumings, Korea's Place in the Sun: A Modern History, 1997.
⁵ Andrei Lankov, The Real North Korea, 2013.

이전 04화AI를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