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야기도
항암치료 중인 이야기도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됩니다.
연말이 다가옵니다.
30대 중반을 넘어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1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도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 다니느라, 아이 키우느라, 벌어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살다가도
연말이 되면 재작년, 작년에도 그랬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연락을 해 안부를 묻습니다.
'요즘엔 어찌 지내냐.'
'연말인데 얼굴 한번 봐야지.'
올해 6월에 암진단을 받은 후,
수시로 연락을 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바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병은 알릴수록 빨리 낫는다.'라는 말이 요즘 세상에 효과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이라도 편하게 털어놓고 대화하는 게
놀라고 서글픈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더군요.
그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어도,
오랜 시간 내가 좋아하고 나를 걱정하고 위해주는 또 다른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연말을 맞이한 반가운 연락에 퍽 난감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얼마나 자세히 말해야 할까.'
아직은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을 나이는 아니라,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보통 육아와 재테크, 직장얘기 정도입니다.
'나 사실 지금 항암치료 중이야.'라는 말은
꺼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참 껄끄러운 말입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
괜스레 먼저 '나 근데 괜찮아.', '생각보다 별 거 아니더라고.' 하고
너스레를 떨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근황을 전합니다.
'저번주에 머리 잘랐어.'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나 6월부터 항암치료받고 있어.'라는 덤덤한 근황 업데이트를 합니다.
처음엔 역시나 당황하는 얼굴과 어쩔 줄 몰라하는 태도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담백하고 진심 어린 어른의 응원이 이어집니다.
'괜찮을 거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넌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울하고 진 빠지는 걱정과 응원의 대화는 길게 가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어제, 오늘, 지금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아픈 이야기도
항암치료 중인 이야기도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됩니다.
아프기 전인 작년 연말과 대화가 바뀐 것이 있나 생각해 보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는 이야기를 하고,
같이 직장상사 험담을 시원하게 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 얼굴을 보며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웁니다.
마무리는 언제나 그랬듯
'또 한 살 먹었네.'로 끝납니다.
늦은 시간 자리가 파하면,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항암약을 물과 함께 삼킵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오늘 하루가 어떠했나 생각해 보면
참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아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있는 덕일까요.
아니면 모두들 40을 바라보는 나이쯤 되니,
질병은, 암 같은 일은,
그냥 인생 사는 중에
언젠가 한 번은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다들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올 한 해 수고했다.'라며 서로를, 또 스스로를 격려하는 말속에
'올해 힘들었다, 올해 즐거웠다, 올해 참 다사다난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저도 올 한 해를 '여러모로 참 수고한 한 해' 정도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자리를 파하며 했던 주문 같은 대화를 떠올리며 마저 잠을 청합니다.
'내년에는 다 잘 될 거야.'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