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note Apr 18. 2020

좋아하지만, 사랑하진 않습니다.


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정말 틈만 나면 동물 짤을 본다.

화장실에서는 기본, 잠깐 계단 내려갈 때도,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모임에서 

지루한 대화가 오갈 때도 몰래 인스타에 저장해둔 '동물친구들' 폴더를 켜

귀여운 염소, 오리, 수달, 해달, 돌고래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한다.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이고 고양이는 거의 내 페리보릿 마이 프레셔스 베스트 남바완. 

(대충 환장하는 수준이라는 뜻)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동물을 키우지는 않는다.

하도 고양이를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서 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한다.

고양이랑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면 입술이 부어오르고,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는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실로 적절한 핑곗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맞지만,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진짜 이유는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 알레르기도 계속 약을 먹으면 낫는 경우도 있다던데 이비인후과에서 3일 치 약을 받아오면 하루만 먹고

이틀 치는 버리는 내가 매일 알레르기 약을 챙겨 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통장에 몇백만 원 정도는 있지만, 부끄럽게도 고양이가 아플 때 몇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한 번에 턱 턱 낼 자신은 없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고양이가 나를 떠날 텐데 그 슬픔과 공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변명이 길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영상 속 1분 남짓한 동물들의 가장 예쁜 모습일 뿐인 것이다.

동물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적은 많지만, 함부로 사랑을 운운해서는 안된다 나 같은 사람은.

(혹시라도 내가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땐 내 주둥이를 때려주시라.)


어렸을 때 여러 종류의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있지만, 후회되는 부분이 많다.

그들을 위해 더 공부하고, 더 나의 시간을 내어줬어야 하는데 난 미성숙한 반려인이었다. 

특히 중학교 때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진돗개 달곰이.

부끄럽게도 나는 달곰이를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데려왔었고, 늘 달곰이에게 바라는 것만 많았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중학생 시절, 난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많은 투정들을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달곰이 앞에서 늘어놓곤 했다.


진짜로 엄마가 필요한 아기 강아지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한 건지.

달곰이는 제때 밥을 챙겨주지 않아도 한 번을 짖지 않던 착한 개였는데

나는 우리 집 상황이 어려워져 아빠가 달곰이를 개장수에게 팔려고 할 때 끝까지 달곰이를 지키지 못했다.

더 울고불고 난리를 쳐 달곰이를 꼭 안고 놔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내 잘못이다.  

개는 주인이 죽으면 주인을 마중 나온다던데 우리 달곰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난 달곰이의 배웅을 받을 자격이 없다. 


식물도 잘 키우지 못하는 내가 언젠가 꼭 동물이 아니더라도 한 생명을 품고, 마음과 시간을 쏟고, 

끝까지 책임지는 날이 온다면 그땐 감히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될까? 

아무튼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혹여라도 동물농장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랑해!'라고 외친다면

그 즉시 입을 다물라는 의미로 내 주둥이를 톡 쳐주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별 일 없이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