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정말 틈만 나면 동물 짤을 본다.
화장실에서는 기본, 잠깐 계단 내려갈 때도,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모임에서
지루한 대화가 오갈 때도 몰래 인스타에 저장해둔 '동물친구들' 폴더를 켜
귀여운 염소, 오리, 수달, 해달, 돌고래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한다.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이고 고양이는 거의 내 페리보릿 마이 프레셔스 베스트 남바완.
(대충 환장하는 수준이라는 뜻)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동물을 키우지는 않는다.
하도 고양이를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서 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한다.
고양이랑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면 입술이 부어오르고,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는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실로 적절한 핑곗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맞지만,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진짜 이유는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 알레르기도 계속 약을 먹으면 낫는 경우도 있다던데 이비인후과에서 3일 치 약을 받아오면 하루만 먹고
이틀 치는 버리는 내가 매일 알레르기 약을 챙겨 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통장에 몇백만 원 정도는 있지만, 부끄럽게도 고양이가 아플 때 몇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한 번에 턱 턱 낼 자신은 없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고양이가 나를 떠날 텐데 그 슬픔과 공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변명이 길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영상 속 1분 남짓한 동물들의 가장 예쁜 모습일 뿐인 것이다.
동물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적은 많지만, 함부로 사랑을 운운해서는 안된다 나 같은 사람은.
(혹시라도 내가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땐 내 주둥이를 때려주시라.)
어렸을 때 여러 종류의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있지만, 후회되는 부분이 많다.
그들을 위해 더 공부하고, 더 나의 시간을 내어줬어야 하는데 난 미성숙한 반려인이었다.
특히 중학교 때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진돗개 달곰이.
부끄럽게도 나는 달곰이를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데려왔었고, 늘 달곰이에게 바라는 것만 많았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중학생 시절, 난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많은 투정들을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달곰이 앞에서 늘어놓곤 했다.
진짜로 엄마가 필요한 아기 강아지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한 건지.
달곰이는 제때 밥을 챙겨주지 않아도 한 번을 짖지 않던 착한 개였는데
나는 우리 집 상황이 어려워져 아빠가 달곰이를 개장수에게 팔려고 할 때 끝까지 달곰이를 지키지 못했다.
더 울고불고 난리를 쳐 달곰이를 꼭 안고 놔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내 잘못이다.
개는 주인이 죽으면 주인을 마중 나온다던데 우리 달곰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난 달곰이의 배웅을 받을 자격이 없다.
식물도 잘 키우지 못하는 내가 언젠가 꼭 동물이 아니더라도 한 생명을 품고, 마음과 시간을 쏟고,
끝까지 책임지는 날이 온다면 그땐 감히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될까?
아무튼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혹여라도 동물농장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랑해!'라고 외친다면
그 즉시 입을 다물라는 의미로 내 주둥이를 톡 쳐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