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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note
Jul 06. 2020
야근으로 육회비빔밥을 먹고 퇴근하는 길에 쓰는 일기.
오랜만에 야근할 일이 있어 야식으로 육회비빔밥을 배달시켰다.
한 끼 밖에 못 먹어 배고프던 중이라 음식을 가지러 내려가는 중에도 이미 마음속으로
육회비빔밥을 비비고 있었는데 웬걸, 카드결제가 안 되는 것이다.
계속 결제해봤지만 해결되지 않아 5분 정도 로비에서 배달기사님과 이리저리 방법을 고민해보다가
결국 기사님은 10분 뒤에 다시 오시겠다며 가게로 돌아가셨다.
10분 뒤에 다시 또 로비로 내려와야 한다니 배가 고파 조금 예민한 상태였지만,
기사님도 꽤 난감해 보이셨고, 이 건 때문에 다른 배달 건이 밀리신 듯 보여
나는 별 말없이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얼마 후 다시 도착하신 기사님.
몇 숟가락 뜨지 못하고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아까 오셨던 기사님은 다른 배달 건이 있으셨는지 다른 기사님이 오셨지만, 이번에도 역시 결제는 되지 않았다.
로비에서 또다시 아까와 같은 작업을 반복하며 시간이 흘렀다.
밥도 못 먹고, 일도 하지 못 한 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기사님께 직접적으로 짜증을 내진 않았지만,
내 표정은 분명 처음 음식을 받아 들 때의 표정과 같은 모양은 아니었으리라.
도저히 결제가 되지 않아 기사님은 직접 카드를 가져가 가게에서 결제하신 뒤 가져다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하기엔 기사님이 너무 번거로우실 것 같았지만 꼭 법인카드로 결제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사님은 가게에 갔다가 다시 오셨고, 나는 음식의 절반도 먹지 못하고 세 번째로 로비에 내려갔다.
(내려가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밥 먹으러 가는 시간을 단축하려고 배달을 시킨 건데
이 정도면 배달비를 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속으로 얼마나 툴툴거렸는지)
30분만 더 야근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결제를 시도하고, 기사님을 기다리고, 로비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총 40분을 소비했다.
기사님은 가게에서 내가 쓰는 카드사를 가맹점으로 등록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며
음식 요금은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순간 계단을 내려오는 잠깐 동안 배달비라도 빼 달라고 해볼까 생각했었던 나의 얄팍한 마음이
부끄러워지면서 방금 전의 상황을 돌이켜 보게 됐다.
결제가 계속 안되자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팔짱을 끼고, 입을 앙 다물고,
빨리 올라가서 밥을 마저 먹고 싶다는 표시로 사무실을 쳐다보며 행동으로 내 감정을 표시했었던 것 같다.
결제 건은 기사님의 문제가 아니라 가게의 문제인 듯 보였고,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몇 번이고 결제를 시도하시는 기사님의 모습을 보며 머리로는 이 문제가 기사님만의 잘못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와 별개로 내 태도에 내 기분이 슬쩍 배어져 나온 것이다.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며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눈 앞에 보이는 남들의 행동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의 행동과 표정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순간순간에 촉을 세우지 않고, 그냥 넘겨버린다면 태도가 기분에 지배되는 사람이 되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이미 다 식어버린 육회비빔밥을 마저 해치우며 아까 기사님께 굳은 표정을 보이지는 말걸 후회했다.
격한 감정이 솟아올라 내 행동까지 지배하려 들 때마다 오늘 육회비빔밥이 준 교훈을 꼭 떠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