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파래진 하늘에 괜히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싶고,
아침 바람 냄새에서 여름 특유의 꿉꿉함이 사라졌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은 참 순식간이다.
그동안 안 왔던 비가 한꺼번에 내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주야장천 비만 오길래 여름이 더 길어지겠구나 싶었는데 하루아침에 가을이 오지 않았나.
순식간에 바뀌는 계절에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는 것은 매년 이맘때쯤 가을이 왔었고,
겨울이 오더라도 금방 또 봄이 올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과 사계절은 지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몇 곱절의 계절을 겪어봐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인데,
적어도 사계절은 지내보라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알고 지내다 보면 상대에 대해 어떤 점은 좋고,
나쁘다고 혼자만의 잣대로 가름하는 일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사람이 네모인 줄 알았는데, 네모일 때도 있고 세모일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비로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판가름하는 일이 참 의미 없고,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리극 속 범인 찾기도 아니고 착한 놈, 나쁜 놈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어리석을 미래의 나는 이런 생각은 언제 했냐는 듯
해맑게 웃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향해 욕을 퍼부을 수 있다.
맹세코 나란 인간은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함부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이건
나는 구태여 당신과 지지고, 볶고, 난리 부르스를 춰볼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당신과 나 사이에 조금 덜 좋은 날 있더라도
뻔뻔하게 바뀌는 계절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사계절, 오계절을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