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눈 감고도 사진 찍는 취미 (하)
나에게 있어 노래와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었고, 내가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유희였다. 반대로, 춤과 사진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고, 때로는 귀찮은 것이었다. 어디 놀러 가서 한참 잘 놀고 있는데 사진이라도 찍자고 하면, 굳이 물이 오른 분위기를 홀딩하고 예쁘게 자리 잡기 위해 답답하게 움직여야 했다.
자리만 잡고 끝이면 다행이다. 고개의 각도, 시선 처리, '이쪽을 보세요!!'
나 시선 처리 더럽게 안 되는 건 한 번씩 내 눈을 진료하는 안과 의사도 인정했단 말이다!
사회생활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그저 정해진 인연들과 정해진 루틴을 보내기만 해도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사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라는 작은 사회로 내쳐진 뒤부터 사진은 자연스럽게 내가 내 주변 정안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주요한 축이 되었다.
정안인이란, 시각장애인들 입장에서 정상 범주의 시력을 가진 사람들을 구분하여 칭하는 말이다. 참고로 은어가 아니라 전문 용어다.
사진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는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사회 흐름이었다. 무려 페이스북이 핫한 시기였던 것이다.
카페 앞 바닷가에서 노을의 시간을 감지한 나는 휴대전화를 만지며 생각했다.
'대충 찍을 게 아니라 좀 제대로 찍을 수 없나?'
대학생 시절, 딱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사진에 죽고 사진에 살아야 했던 시간들 탓에 나는 자연스럽게 물들어 있었다. 여전히 프레임 안에 무엇이 담겨 있고, 어떤 식으로 담겨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찍을 거면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 최대한의 성의는 갖춰야 했다.
'정답을 알려 주세요, 현자님!'
ChatGPT를 실행했다. 지금 노을이 지는 바다에 서 있는데, 사진을 찍고 싶고, 그런데 나는 눈이 제대로 안 보여서 어떻게 찍어야 예쁜지 모르겠고, 바다랑 하늘 말고 또 어떤 풍경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구구절절...
언제나 그랬듯, 내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적고 궁금해 죽겠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긴 내용을 적어 가며 완벽한 질문을 하는 것이 그날따라 너무나도, 너무나도 귀찮았다.
'음성 대화 기능을 켜야지.'
적기 귀찮으니까 그냥 말로 할 요량으로 음성 대화 기능 아이콘을 찾았다. 그런데 그 옆에,
'화면 공유??'
내 사고 체계에 벼락이 쳤다. 빛의 속도로 화면 공유 아이콘을 눌렀다. 이제 이 인공지능은 내 폰 화면을 같이 볼 수 있다. 내가 지인들 SNS를 염탐할 때 사진 설명이 필요하면 언제나 활성화하는 기능이었다.
화면 공유가 시작됐으니 이제 인스타를, '아니지!'
습관이라는 게 무섭다. 나는 SNS 대신 카메라 앱을 켰다.
생각을 폭넓게 해 보자. 인공지능이 내 폰 화면을 볼 수 있다는 얘기는 말 그대로 화면 자체를 눈으로 보듯이 본다는 것이다. 그럼 폰 화면을 카메라 상태로 전환하면?
"지금 화면에 뭐가 보여?"
"바다 풍경이 보이네요. 하늘은... 수평선은..."
'시, 신세계!!'
"사진을 찍고 싶어. 지금 이 상태로 찍으면 될까? 아니면, 구도를 좀 수정하는 게 좋을까?"
'이것까지 되면 니가 내 아부지다!'
"지금 구도도 아주 괜찮아. 하늘의 주황빛과 푸른색이 이어지는 공간을 잘 포착하고 있어서 막 해가 지는 저녁 바다를 사진으로 남기기에 적합해.
단, 하늘에 뻗어 있는 전선 세 가닥이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어. 조금만 왼쪽으로 이동해서 사진을 찍으면 니가 원하는 풍경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을 거야."
'예, 아바마마! 소자 그리 하겠사옵니다!!'
미친 건가? 이게 되다니! 그날 찍은 사진을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내가 '대충 이쯤이겠지?' 하고 무성의하게 포커싱 해서 찍은 사진들이랑은 반응부터가 달랐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찍는 거지만, 우리 아부지는 기본적으로 사진을 첨부하면 설명도 해주신다. 전경에는 뭐가 있고, 중경이랑 후경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체적인 감성은 어떻고, 촬영의 질은 또 어떠한지...
그날 이후, 내 취미에 사진이 추가되었다. 4월이면 점심시간에 직장 앞으로 흐드러진 벚나무를 찍었고, 5월에는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면서 내 일상의 기록을 사진으로 대체했다.
6월에 공모전에 응모할 소설을 쓸 때에는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인공지능에 첨부해 사진 설명을 들으면서 얕게 고여만 있던 내 감성을 낭낭하게 채웠다.
물론 인공지능의 사진 설명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ChatGPT는 어디까지나 언어 모델인데, 이는 곧 맥락 중심으로 내 요청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의 컨셉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기만 해도 그 뒤로 사용자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일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잘 걸러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좋았다. 이제 완벽히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사진을 보는 재미와 찍는 재미까지도,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에 담는 마음까지도.
내가 찍은 사진을 넘겨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즐거움을 알 테니까. 봄의 장미 정원을, 여름의 밤바다를, 가을의 가로수 길을, 겨울의 크리스마스트리 옆을...
예전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걸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