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레터 season 1

7. 눈 감고도 사진 찍는 취미(상)

by 윤설

파도가 치고 밀물이 들면 맨 나중에 적셔지는 땅, 그곳에서 아주 가까이에 자리한 카페가 내 단골 아지트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날씨가 좋아야 찾아간다. 큰마음 먹고 가야 하니까.


그날은 3월의 어느 한때였고, 4월 중순마냥 날이 좋았다. 카페 한 켠에서 몇 자 끄적이던 나는 한 편의 절반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당시 내가 쓰던 건 판타지 웹소설이었는데, 플랫폼 연재 기준이 편당 5,000자였기 때문에 한 편을 쓰는 게 상당한 감성 노가다였다.


오늘은 날이 아니다 싶어 다 마신 커피를 내놓고 자리를 비웠다. 손에는 새로 주문한 라거가 들려 있었다. 그렇다. 이 카페는 맥주도 판다.


오후 3시. 카페 앞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비치발리볼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공을 치는 소리가 둔탁하지만 가볍고, 좀처럼 공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펌프질 빡세게 한 비치볼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쪽 귀에 이어폰을 걸쳤다.


남녀 발라드 가수가 듀엣을 이루는 경쾌한 플레이리스트로 고르고 거품 진 한 모금을 했다. 머리 위로 햇살이 내려 나를 관통하고는 온 세상으로 퍼졌다.


오후 4시. 여전히 오른쪽 귀로는 전자악기와 튜닝된 목소리가 조합된 사운드를 듣고, 반대쪽 귀로는 조율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 엄마들은 비치발리볼이 지겨워진 아이들과 놀아 줘야 했고, 아빠들은 그런 엄마와 아이들을 동시에 놀아 줘야 했다. 슬슬 얇은 바람 여러 가닥이 다각도로 나를 훑었다. 그 서슬에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던 대낮의 햇살 몇 줌이 조심스레 자리를 비켰다.


오후 5시. 사람들의 기척이 차츰 사라졌다. 선곡을 바꿨다. 뉴에이지 피아노 플레이리스트로. 완전히 뜨지도 않고 깊게 가라앉지도 않는 왼손의 반주가 잔잔하게 이는 파도 같다. 평온한 바다 위로 날리는 눈발같이, 가늘게 흐르는 오른손의 반주는 허공을 쓸어 만지면 묻어날 듯하다.


그 사이로 실재하는 파도가 쉼 없이 친다. 고요해졌기에 느낄 수 있었던 나만의 세계에 집중했다.


오후 6시. 비교적 쓸 만하게 기능하는 오른쪽 눈에 빛의 응어리가 잡혔다. 조금 내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하늘과 바다를 한 프레임에 담듯이 보았다. 끝 간 데 없이 퍼져 있던 햇살은 이제 작게 작게 뭉쳐진 빛 덩어리처럼 되었다. 그렇게 보고 느꼈다.


눈이 부시던 하늘은 옅은 색채의 물감을 덧칠한 것마냥 가려져 보였다. 그 사이로 찌르듯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햇살의 덩어리, 내가 알기로 이 시간이 저녁노을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옅은 색으로 가려진 듯했던 하늘은 삽시간에 짙은 색으로 물들 것이었고, 그 아래에 펼쳐진 바다도 따라서 어두워질 것이었다.


이런 게 좋았다. 확실히 밝다고도 말할 수 없고, 완전히 어둡다고도 느낄 수 없는 변화의 순간, 밝음이 어두움으로 바뀌어 가는 시간, 완전히 뜨지도 않고 깊게 가라앉지도 않는, 그러나 결국은 침전하고야 말 나의 하루.


'하루가 갈 때 가더라도, 사진 한 장 정도는 괜찮잖아.'


음악을 끄고 폰 화면을 바꿨다.

매거진의 이전글윤설레터 season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