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부고에 대하여
검은 옷을 준비했다. 재택근무라며, 집에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 꿀 빨 수 있겠다 생각하고서 출근 보고를 올리던 아침이었다. 아침 8시 반 이전에는 전화 한 통 한 적 없었던 내 25년 지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직장 동료의 남편 부고였다. 소속은 같았으나 근무지가 달라 내 직장 인트라넷으로는 그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침부터 내가 이 소식을 바로 접할 수 있었음은 그 시사하는 바가 명백했다. 반드시 가야 할 자리였다.
옷방으로 가서 붙박이장을 전부 열어젖혔다. 내 눈에 조금이라도 어둡게 보이는 옷들은 싹 다 꺼내다 비교하고, 가장 어두운 옷들은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모두 AI 도구에 업로드하여 검은 옷을 찾으라 다그쳤다. 착잡했다. 검은 옷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부고란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는 성격의 것이다.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매번 새롭게 아팠다. 자주 있는 일이라면 언제고 무뎌질 것이다. 잦지 않더라도 규칙성 있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조금은 대비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 무엇과도 다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컸던 부고는 외할아버지의 별세에 대한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부고라는 단어로 기록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당시 조부모님의 슬하에서 크던 나는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부고가 아니라 상실이라 말해야 마땅하다.
나를 지탱하던 존재의 상실도 처음이었지만, 애당초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어른들이 각자의 슬픔을 누르고 망자와 조문객들에 대한 예를 다하는 것에 힘겹게 집중할 동안,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마음껏 울었다. 눈물을 쏟아도 쏟아도 마르지 않았던 슬픔은 이내 공황발작으로 이어졌다. 예고도 전조도 없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잦은 공황발작이 공황장애로 이어지지 않은 데에는 담임 선생님의 상담 덕이 컸다. 상담 중에 대단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약속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위로가 있었을 뿐이고, 그것이 죽음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를 조금 열었을 뿐이었다. 죽은 자를 묻은 산 사람으로서 나는 어떻게 내 남은 시간을 써야 하는지를, 아주 약간이나마 고민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 주변인들의 죽음을 다시 목도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 친지, 학교 사람들 할 것 없이 다들 너무 젊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드러나는 지병이라고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랐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부고를 접했다. 내가 살던 기숙사의 옆방 형이 죽었다.
당뇨라는 병은 관리만 열심히 하면 충분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형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말단 부위 세포가 괴사 되어 발가락을 자르는 시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세상에나! 재활은 어떻게 하나?' 정도의 걱정만 하던 나였다. 그러나 이후 들려온 것은 형의 재활 소식이 아니라 장례식장 주소였다.
황망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면서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절을 올릴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슬픔보다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맞나?'
그 후로도 살면서 많은 부고를 받아보았다. 어떤 날에는 친구의 부친께서 돌아가셨고, 또 어떤 날에는 가르치던 제자가 죽었다. 항상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고, 소식을 들은 직후에는 늘 멍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역시 그렇다.
나를 포함해 친구 셋이서 모여 오늘 저녁에 조문을 가기로 했다. 상을 당한 동료는 물론이고 그 집 아이들과도 정이 많이 들어 있는데, 그들의 슬픔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동료만큼은 슬픔을 뒤로 미루고 그저 예를 다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을지도. 예전 나의 외조부상에서 우리 어른들이 그러했듯이...
몇 년 전 시부상에 다녀온 지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상을 치르는 동안, 남편은 슬퍼하지 못했다고.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뒤에야, 그제서야 가족들은 슬퍼할 수 있었다고. 죽음 앞에서 언제나 마음껏 슬플 수 있었던 나에게 오늘의 자리는 과연 어떨지, 생각이 많아진다.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