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다림, 그 유한함에 대하여
양쪽 쇄골 사이의 오목한 살, 그 안쪽이 짜증 날 정도로 간지럽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흉골의 뒤쪽도 같이 간지럽다. 수세미로 때를 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살이나 근육이 아니라 기관지, 그 망할 호흡기가 간지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알레르기성 기관지염, 그것은 1차로 분지 하는 맨 위쪽 기관지에서부터 진득한 가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정확히는 공장처럼 찍어낸다. 그 빌어먹을 생산품들이 기관지라는 통로를 그득히 메우고, 내 들숨과 날숨에 따라 벽면에 돋아난 잔털들이랑 슬금슬금 마찰하면 나는 기침을 한다. 그렇게 사나이 가슴을 울리는 기침을 한차례 하면 반드시 그 가래 덩어리는 배출된다.
그러나 수십, 수백 번의 기침으로 그 망할 놈들을 밖에다 퍼다 날라도 좀처럼 끝은 다가오지 않는다. 계속 활발하게 가동 중인 기관지염 벨트가 수요보다 빠른 공급으로 풍족한 그, '이제 더러우니까 안 적겠다' 놈들을 찍어내기 때문이다. 진짜 더럽다. 이런 상태로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도록 설계된 내 몸이 그냥 더럽다.
말 그대로 알레르기성인 이 질병은 수분 섭취, 약물 복용, 흡입기 병행 등으로 관리하는 것 외에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감기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처럼 내 안의 면역 세포가 병인을 자동 격퇴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의외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언제나 그 끝이 있을 걸 알기에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죠."
출근길 택시 안에서 들리던 라디오 멘트가 아주 기가 막혔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이어지는 폭풍 기침으로 나는 기도가 막혔다. 그래, 나도 안다. 이 요망한 염증이 언젠가 내 기관지에서 흔적도 없어질 날이 올 것임을.
그래서 혹시 그게 오늘인가? 아니면 내일이라고 짐작할 근거는 있는가? 없다. 근거 따위 없다.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몸의 변화가 의외로 뚜렷하다. 열이 내려가거나 기침과 콧물이 잦아드는 것이 체감이 된다. 자기 전 내 몸 상태를 대략 체크해 보면, '내일 낫겠네' 하는 어림짐작이 된다. 하지만, 기관지염은 그렇지 않다. 일단 하루를 잦은 기침으로 시작하면 그날은 무슨 약을 먹든 변함없이 기침데이이다.
결국은 하루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봐야 그날의 예후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출근길의 예술적인 라디오 멘트와는 다르게 나는 언젠가 내 아픔이 가실 것을 뻔히 알더라도 지금을 견디기 힘들다. 멘트 수정이 시급하다. 기다림은 그 유한함을 안다는 것만으로 견뎌내기 어렵다.
항상 장난감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었던 초딩 시절, 나는 세 마리의 공룡이 3단 합체하는 로봇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스테고의 등지느러미, 프테라노돈의 날개, 티라노의 머리... 그 섹시한 자태에 홀려 매대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나중에 사준다는 어른들의 약속도 나를 흔들 수 없었다. 정확히 다음 주 토요일에 사준다는 확답만이 내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학교에서 적당한 사고를 치고 교실 뒤로 가서 손 들고 서 있어야 했던 어느 날, 10분도 지나지 않아 나의 스트레스는 한계를 찍었다. 슬슬 지옥도를 걷는 심정이었던 나에게, '10분 더 그러고 있다가 들어와'라는 선생님의 선고는 의외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아, 앞으로 10분 뒤면 편해지는구나.'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주로 하는 질문들을 생각해 보자.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재수까지 슬픈 결말로 마치고 슬슬 3수를 준비하는 고시생은 이런 질문도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 시험에 매달려야 하나? 내년 이맘때에는 붙을 수 있나?
기다림은 그 유한함을 안다는 것만으로 견뎌내기 어렵다. 그 끝이 언제인지까지 알아야만 비로소 감당 가능한 것이 된다. 허나 대부분의 경우, 그 종착지까지의 거리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먹통이다. 그래서 좀 속도를 내어 빠르게 도달해 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힘과 능력으로 견딜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기다림이 아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내가 끝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끝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다. 괜히 가만히 기다리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종용하지 않으나, 그저 가만히 있을 것만을 강요하는 속절없는 것이다.
술을 잠시 끊고, 운동도 한동안 쉰다. 얼어 죽기 전에는 냉수만 고집하던 내가 뜨끈한 온수로 기도를 코팅한다. 무슨 고급 영양제마냥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고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여행가방을 싼다.
기다림의 끝을 향해 달리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 끝이 다가오는 속도가 늦춰지지 않도록 앉은자리에서 내 할 바를 다한다. 앉아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움직임이 던지는 것이라면, 기다림의 끝에서 내가 만날 기쁨을 미리 던져 놓는다.
'다 나으면 여행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