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감동하는가?

by 지현옥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정원의 위로> 저자, 김선미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무엇에 감동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열었다.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새싹이 뾰족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감동한다고. 요즘 수없이 감동한다고.


<정원의 위로>에서 작가는 국내 아름다운 정원을 소개한다. 개인 정원, 수목원, 대형 국가 정원 가운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녹아 있는 24곳을 담아냈다.


속달동 마당은 정원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민망한 곳이다. 반은 풀밭, 반은 꽃밭에 작은 텃밭이 있다. 이곳에서 나도 날마다 감동한다. 물론 힘은 든다. 하지만 수고 이상으로 감탄의 순간들이 삶을 지탱하게 해 준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고, 기쁨을 누린다.



상사화가 울타리 밑을 초록으로 채울 때 경이롭다. 겨울을 버티고 양파가 올라올 때, 다 죽은 줄 알았던 마늘이 뒤늦게 초록을 보일 때, 눈물 나게 고맙다. 부추가 올라오고, 방풍이 잎을 펼치자 봄의 한가운데 왔음을 느낀다.


완두콩도 싹을 틔웠다.

바람에 봄 냄새가 실리면 가장 먼저 심는 것이 완두콩이다. 꽃샘추위가 마지막 심술을 부리던 날, 한 뼘 텃밭에 콩알을 넣고 보드라운 흙 이불을 덮어주었다.


흙냄새를 맡고 씨앗들이 깨어났다. 덮었던 이불을 살포시 걷어차고 일제히 얼굴을 내밀었다. 수줍게 고개를 내민 연둣빛 싹들이 어찌나 귀엽고 기특한지. 꽃을 보듯 보았다. 작은 나비가 날개를 펼친 듯, 갓난아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듯 생명의 신비가 가득하다.



여리고 작은 잎 어디에 흙을 뚫고 나온 강인함이 있는 것인지 신통방통이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모금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날 준비를 마쳤다.


아기는 걸음마를 배우기 전, 안전하게 잡아 줄 보행기가 필요하다. 완두콩도 덩굴손이 뻗어나갈 버팀목이 있어야 한다. 전지한 매실나무 잔 가지를 촘촘히 꽂아주었다.


이제 마음껏 자라서 통통한 완두 꼬투리를 맺겠노라고 작은 두 손을 모아 배시시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다. 막 나온 나풀나풀한 새싹을 보며 6월의 완두 따는 날을 상상한다.


벌써 웃음이 인다. 탱글탱글한 초록 구슬들이 깍지 속에서 또로록 굴러 나오는 날, 내 눈에서도 알알이 맺힌 기쁨이 쏟아지고 또 감격할 것이다.


흙을 만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4월은 종종거리는 달이다. 완두콩 다음으로 쌈채소 씨앗을 뿌렸다. 일찍 먹을 상추는 모종으로 몇 포기 심고, 나머지는 파종을 했다.


상추, 치커리, 쑥갓, 아욱, 당근, 비트, 고수, 공심채. 아는 채소는 다 뿌렸다. 머지않아 텃밭은 곧 마트가 될 것이고 입맛까지 감탄할 것이다.



꽃씨도 뿌렸다.

미니 백일홍, 물망초, 과꽃, 분홍낮달맞이, 라벤더, 로즈메리까지.


손바닥 위에 올려진 씨앗은 보잘것없이 작고 가볍다. 한 점 바람에도 훅 날아갈 것만 같다.

그 작은 점 하나가 초록 잎을 틔우고, 색색의 꽃을 피워낸다는 사실은 얼마나 경이롭고 설레는 일인가. 정성껏 덮어준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고 반드시 아름다운 시간을 데려올 것이다.


두릅이 움트고, 감자 싹이 나올 것이다. 붉게 올라온 작약은 둥실둥실한 함박웃음을 터트릴 날이 다가온다. 뾰족이 창처럼 올라오고 있는 붓꽃도 화단에 보랏빛을 더하겠지. 이곳엔 매일 이렇게 감동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김선미 작가는 정원 산책을 통해 위로와 회복이 있는 자신의 시크릿가든을 찾아다닌다. 정원은 문학, 예술, 자연, 산업, 과학,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통섭의 장소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심오한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나에게 이곳은 마음의 부유물을 걷어내고 나 자신과 고요하게 대화할 수 있는 휴식과 생명의 공간이다. 흙을 뚫고 나오는 그 힘찬 기운은 오직 감동할 수 있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성찬이다.


오늘은 진달래까지 마음을 흔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