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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29. 2018

[영화] 해피투게더

해피하거나 투게더 하거나


글쓰기 귀찮다.

그렇다. 요즘 거의 매일 행복하다.

(https://brunch.co.kr/@favor2002/69)


그... 뭐 별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월화수목금 루~틴한 일주일인데 그냥 행복하다.


그래서 겨우겨우 술의 힘을 빌려 이 글을 쓴다.

나는 너무 게을러서 '사유를 강제하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를 추동해야만 그에 따른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 만약 '강제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나는 굉장히... 괴롭게...(말잇못)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정도로 나를 추동하는 작품이 1년에 내가 소비하는 수많은 전시, 책, 영화, 공연 중에 몇 없다는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


아무튼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주말부터, 내내, 이거에 대해서 생각했고 여러 번 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밖에 쓰질 못했고 늘 그렇듯이 완성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글을 올린다. 언젠간 쓰겠지 '-'


햅삐!




1. '안' 해피투게더

영화에서 아휘와 보영이 사랑의 환희에 벅차 행복해하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해피투게더>라는 제목을 떠올렸을 때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해피는 무슨


그들은 좁고 낡은 방에서 내내, 싸우고 화내고 등 돌리고 소리치고 부수면서, 자기 파괴적인 관계를 이어나갈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해피와 투게더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인 개념이고, 해피투게더는 피안의 세계에나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이상향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착같이 투게더를 고집한다.

보영은 아휘의 거절과 냉담에도 개의치 않고 끈질기게 구애하고, 위협적인 폭력을 감내하면서도 아휘에게 값비싼 시계를 훔쳐다 준다. 아휘도 마찬가지다. 아휘는 보영의 손이 영원히 낫지 않기만을 바라고, 손이 다 나은 다음에는 여권을 감춘다.
솔직히 미친놈 대 미친놈이다.


투게더 투게더 투게더


파국을 향해 치닫는 두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나서야 아휘와 보영, 그리고 나는 깨닫고 만다. '투게더'만이 끈적하게 눌어붙은 이곳에 '해피'란 없음을




2. 봄햇살

그래서 나는 차라리 '춘광 사설'이라는 원제목이 더욱더 아련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다.

'구름 속에서 잠깐 새어 나오는 봄햇살'이라니


원체도 길지 않은 봄햇살이, 텁텁한 구름 사이를 비집고 미약하게나마 따습게 내리쬐는 순간의 황홀감이란

지루했던 겨울에 안녕을 고하는, 유일하고도 희귀한 온기와 찬란함이란

채 녹지 못한 눈과 코끝에 남은 겨울 냄새와 드문드문한 햇살이 사이좋게 어우러진 어느 볕 좋은 날의 낭만이란



나는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기에 좋은' 제목을 붙이는 것조차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영화는 제목부터 끝내준다는 거다.




3. 흑백 혹은 총천연

사실 나는 집중력이 없다시피 해서 영화 초반에 나를 확 잡아당기는 무언가가 없으면 끝까지 보지 못한다.


그래서 특히 나는 흑백영화에 취약한데, 미장센에 죽고 못 사는 나에게 흑과 백으로 나뉘는 공간은 지독하게 납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납작하게 눌려서 모든 공기가 빠져나간 듯한 진공의 스크린을 지긋하게 마주하다 보면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만다.


졸리다는 뜻이다.


친구에게 몇 번이고! 강추 강추! 를 받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 관람을 포기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와 같은 분들께 초반 진입장벽을 꾸역꾸역 극복하기를 권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미묘한 노이즈가 느껴지는, 너덜너덜한 화질의 흑백 필름 으로부터 시작한다.

아휘와 보영의 과거는 모든 색감을 거세하고 남은 최소한의 흑과 백으로 표현된 어느 타국에서 시작된다.


격정적 섹스, 그보다 더 격정적인 다툼, 그 끝의 헤어짐


그 모든 기억을 흑과 백에 묻은 채 그들이 재회하던 날 영화는 갑자기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이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변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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