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고정해야 말투가 안 흔들린다
이 시리즈는 AI를 활용해 장기 연재를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 글이며, 실제 적용 예시는 브런치 연재 《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경이 잡히면 이제 사람을 넣고 싶어진다.
회사라는 무대도 생겼고,
분위기도 정리됐고,
이제 그 안에서 누가 움직일지만 정하면
바로 이야기가 굴러갈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단계에서 바로 이렇게 간다.
이름을 정한다
나이를 정한다
직업을 정한다
대충 성격을 한 줄 붙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32세, 회사원, 성실한 성격.”
“40세, 워킹맘, 차분하고 책임감 있음.”
“25세, 신입 기획자, 열심히 하는 타입.”
이 정도면 얼핏 인물이 생긴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막상 원고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잘 안 움직인다.
왜냐하면 이건 아직 사람이라기보다
이력서 요약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름, 나이, 직업, 성격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걸 적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떤 문장에서 흔들리고,
무엇을 원하고,
어떤 순간에 침묵하고,
왜 비슷한 사건 앞에서 남들과 다르게 반응하는지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 이야기할 건 바로 그 부분이다.
이번 화에서는 왜 주인공 문서가 필요한지,
그리고 이름과 직업만으로는 왜 인물이 안 되는지를 다룬다.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주인공 문서는 사람 정보를 늘어놓는 문서가 아니다.
이 사람이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지 고정하는 문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물 문서도 훨씬 쉬워진다.
긴 글을 쓰다 보면
주인공이 어느 순간 조금씩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분명히 순진한 사람이었는데,
몇 화 뒤에는 너무 노련해 보인다.
처음에는 말이 짧고 직선적이었는데,
어느새 설명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 된다.
처음에는 억울해하는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관찰자가 된다.
이건 흔하다.
그리고 대개 글을 못 써서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더 자주 있는 원인은,
인물을 설명하는 정보는 있는데, 판단 기준이 문서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실하다”
“착실하다”
“열심히 한다”
같은 설명은 방향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 장면 앞에서는 생각보다 약하다.
왜냐하면 같은 “성실한 사람”도
회의실에서 질문하는 방식이 다르고,
상사에게 혼났을 때의 반응이 다르고,
실수를 했을 때 숨는지 정리하는지,
후배를 만났을 때 말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인물을 고정하는 데 필요한 건
좋은 성격 형용사보다
반복되는 판단 방식이다.
긴 글에서 인물이 흔들리는 이유는 대개 여기서 나온다.
이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는 적었는데,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는
문서로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이건 분명히 해두는 편이 좋다.
이름과 직업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초보자가 종종
그 단계에서 멈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강도윤, 1982년생, 2006년 입사, 운영기획팀 신입.”
이건 분명 정보다. 실제로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 정보는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는 말해주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 문서가 진짜 힘을 가지려면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붙어야 한다.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하나
무엇을 두려워하나
왜 그걸 중요하게 여기나
말투는 어떤가
처음과 나중에 무엇이 달라지나
이 사람을 상징하는 반복 장면은 무엇인가
이게 붙기 시작하면
이 사람은 단순한 직업 정보가 아니라
원고 안에서 반복해서 불러올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가상의 게임회사 이야기를 만들 때도
처음엔 주인공을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다.
신입사원,
게임회사 입사,
성실한 타입,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
이 정도만 해도 얼핏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장기 연재를 밀어가려면
이 정도로는 약했다.
왜냐하면 이 상태로는
초반에만 그럴듯하고,
몇 화 지나면 말투와 판단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주인공 문서를 더 깊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강도윤 문서에는 이런 항목들이 들어갔다.
한 줄 정의
독자가 처음 느껴야 하는 인상
입사 당시 기대와 첫 충격
근본적인 욕망
근본적인 두려움
강점과 약점
초반, 중반, 후반의 말투
회사와의 관계 변화
페이즈별 심리 변화
반복 이미지
이건 분량을 늘리기 위한 설정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이 문서가 생기고 나서야
원고에서 강도윤이 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뒤부터는
“이 장면에서 뭘 말하게 할까?”를 감으로만 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미 문서 안에
이 사람이 처음엔 어떤 태도로 회사를 보는지,
왜 상사에게 바로 “왜요?”라고 묻는 사람인지,
왜 회사를 미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지의 기준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인물 문서에도 여러 항목이 있었지만,
원고를 쓸 때 특히 자주 다시 보게 된 것들이 있다.
이건 생각보다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강도윤의 한 줄 정의는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신입이, 회사의 언어를 배우고, 사람을 책임지고, 결국 자신이 가장 비판하던 결정을 직접 내리게 되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은 소개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고를 쓸 때 자주 다시 보게 됐다.
왜냐하면 이 한 줄이
이 사람이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라는 점,
회사의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이 핵심이라는 점,
후반에는 비판하던 결정을 직접 하는 쪽으로 변한다는 점을
한 번에 묶어주기 때문이다.
좋은 한 줄 정의는 인물 전체의 압축판이다.
이 항목도 강했다.
예를 들어 강도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 효율적으로 일할 거라고 생각했고,
좋은 아이디어와 성실함이 인정받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무도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지 않고,
중요한 것은 문서에 없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첫 충격을 받는다.
이 항목이 있으면
초반 원고를 쓸 때 굉장히 편해진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왜 어색해하고,
왜 억울해하고,
왜 그때그때 이해가 안 되는지를
매번 새로 발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건 인물을 평면에서 입체로 바꾸는 핵심이다.
강도윤은 단순히 승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일의 기준이 너무 무너지지 않는 상태”,
“노력한 사람이 아주 바보가 되지는 않는 환경”을 원한다.
반대로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자기가 믿은 기준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렇게 정리되면
이 사람의 선택이 훨씬 이해되기 쉬워진다.
실제로 인물은
좋아하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것에서 더 자주 드러난다.
이건 초보자에게 특히 추천할 만한 항목이다.
예를 들어 강도윤은 초반에는
“그럼 이건 누가 정하는 건가요?”
“이렇게 하면 더 낫지 않을까요?”
같이 비교적 직선적으로 말한다.
중반에는
“일단 지금 기준으로 보면…”
“현실적으로는 이쪽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같이 조정의 언어를 배우고,
후반에는
“지금은 이 결정을 먼저 해야 합니다.”
처럼 설명을 줄이는 쪽으로 간다.
이 항목이 있으면 말투가 덜 흔들린다.
그리고 화가 쌓일수록 변화도 더 선명해진다.
이건 인물을 글자보다 장면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다.
예를 들어
회의 메모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 습관,
늦은 밤 빈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는 시선,
ID카드를 무심코 만지는 손 같은 것들.
이런 이미지는 꼭 처음부터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서에 적혀 있으면
원고에서 반복적으로 불러오기 쉽다.
인물이 설명보다 장면으로 기억되기 시작하는 건 대개 여기서부터다.
이건 꽤 중요하다.
주인공 문서가 없을 때는
AI가 그럴듯한 인물을 만들어줘도
조금씩 다른 사람이 나오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너무 똑똑하게 말하고,
어떤 날은 너무 순진하고,
어떤 날은 지나치게 세상을 다 본 사람처럼 말할 수 있다.
하나하나 보면 다 나쁘지 않다.
문제는 한 사람처럼 안 보인다는 점이다.
반대로 인물 문서가 있으면
사람이 초안을 고칠 때도 기준이 생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장면에서는 너무 빨리 세상을 다 이해한 것처럼 말한다 → 초반 강도윤답지 않다
이 문단은 지나치게 자기 확신이 강하다 → “회사의 언어를 아직 모르는 사람” 기준과 안 맞는다
이 반응은 너무 무기력하다 → 강도윤은 관찰형이지만 체념형은 아니다
이 설명은 너무 매끄럽다 → 초반 말투는 더 직선적이고 어설퍼야 한다
즉 인물 문서는
인물 소개용 문서가 아니라
원고 수정 기준표 역할도 한다.
이건 실제로 꽤 강했다.
1화와 2화 원고를 손볼 때도
“강도윤은 아직 회사라는 동물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똑똑한 문장을 걷어낼 수 있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실수도 미리 짚는 편이 좋다.
성실하다, 따뜻하다, 냉정하다, 유머 있다.
이런 형용사는 방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제 장면에서 약하다.
왜냐하면 형용사는 설명이고,
원고는 반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이, 직업, 학력, MBTI까지 다 적어두는데
정작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안 적는 경우가 많다.
그럼 인물은 정보는 많은데 움직임은 약해진다.
특히 주인공은 자꾸 완성형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똑똑하고,
통찰이 있고,
말도 잘하고,
상황도 잘 읽고,
상처도 깊고,
그래도 사람도 챙기는 사람.
이렇게 되면 설명은 멋있다.
하지만 초반 원고는 재미가 떨어질 수 있다.
강도윤 문서에서도 강조된 건
처음부터 지나치게 똑똑하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인물 문서도 기준 문서와 비슷하다.
만들기만 하고 안 보면 힘이 약하다.
원고를 쓰기 전,
특히 말투가 흔들릴 때,
초반 인상이 약해질 때,
장면에서 반응이 애매할 때
반드시 다시 봐야 한다.
인물 문서는 소개서가 아니라
반복해서 다시 보는 기준이다.
초보자에게는 복잡할 필요가 없다.
처음엔 아래 여섯 가지면 충분하다.
이 사람이 어떤 흐름으로 변하는 사람인지 적는다.
예: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신입이 회사의 언어를 배우며 변해가는 사람
가족을 지키고 싶지만 점점 자기 시간을 잃어가는 사람
창작을 하고 싶지만 생계를 핑계로 계속 미루는 사람
독자가 처음 봤을 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적는다.
예:
착실하다
약간 답답할 만큼 정공법을 믿는다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 상황상 웃긴 사람이 된다
이 항목은 강했다.
왜냐하면 초반 장면에서 이 인상을 자꾸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진짜 원하는 상태는 무엇인지 적는다.
승진, 성공, 사랑처럼 너무 큰 단어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쪽이 좋다.
예:
노력한 사람이 아주 바보가 되지는 않는 환경
내가 책임지는 일이 부끄럽지 않게 굴러가는 상태
가족 안에서 내 몫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삶
이 사람이 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적는다.
예: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결국 내가 싫어하던 사람과 닮는 것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것
초반에 자주 쓰는 문장,
중반에 바뀌는 방식,
후반에 줄어드는 설명을 적는다.
이건 초안에서 정말 도움이 된다.
행동 습관이나 손버릇, 시선, 반복되는 문장을 적는다.
이건 인물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 여섯 가지면
처음 문서로는 충분하다.
이 부분도 꽤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인물을 만들 때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따뜻한가, 차가운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긴 글에서는 그보다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강도윤은
냉소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관찰형이다.
사람을 쉽게 싫어하지 못하고,
구조를 이해하면 견딜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해석 방식이 정해지면
같은 사건을 만나도 반응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바로 화를 낸다
어떤 사람은 농담으로 넘긴다
어떤 사람은 속으로 구조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책부터 한다
인물을 고정하는 핵심은
바로 이 차이를 문서로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인물 문서는
성격 검사 결과표보다,
반응 패턴 정리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오늘도 해야 할 건 많지 않다.
내 주인공을 한 줄로 적는다.
예: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신입이 회사의 언어를 배우며 변하는 사람
아이를 사랑하지만 자기 삶도 잃고 싶지 않은 엄마
글을 쓰고 싶지만 늘 현실적인 이유를 먼저 대는 직장인
초반에 독자가 느껴야 할 인상 3개를 적는다.
예:
성실하다
약간 답답하다
얄밉지 않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것과 두려운 것을 각각 2개씩 적는다.
이 사람이 자주 하는 말 2개를 적는다.
예:
“정리하면 이런 뜻 맞으시죠?”
“그럼 이건 누가 정하는 건가요?”
반복 이미지 2개를 적는다.
예:
메모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 습관
빈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고 나가는 시선
이 내용을 AI에게 보내
“주인공 기준 문서 v1”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다.
예:
아래 내용을 바탕으로 주인공 기준 문서 v1을 정리해줘.
소개문처럼 예쁘게 쓰기보다, 원고를 쓸 때 말투와 반응이 덜 흔들리게 만드는 기준 문서로 정리해줘.
나온 답을 보고
“이 사람답다 / 아직 남의 말 같다”를 구분해
내 문장으로 한 번 더 고친다.
오늘 목표는 완성형 캐릭터가 아니다.
주인공 소개문도 아니다.
1화 원고도 아니다.
오늘 얻어야 하는 건 딱 하나다.
이 문서가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원고를 쓸 때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렇게 상처받는지,
왜 이런 장면에서 멈칫하는지가 훨씬 잘 보이기 시작한다.
긴 글에서 인물은 설정이 아니라 축이다.
배경이 사건을 계속 만들게 하는 힘이라면,
주인공 문서는 그 사건을 한 사람의 해석으로 묶어주는 힘이다.
좋은 인물 문서는 사람을 복잡하게 보이게 만들기 위한 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한 사람이 같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문서다.
나는 이 차이가 꽤 컸다.
주인공 문서가 없을 때는
매번 장면을 쓸 때마다
“이 사람이 여기서 어떻게 반응하지?”를 새로 발명해야 했다.
주인공 문서가 생기자
그 질문이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는 보이기 시작했다.
긴 글은 보통 거기서부터 덜 무서워진다.
1. 주인공 한 줄 정의를 적는다.
2. 초반 인상 3개를 적는다.
3. 욕망 2개와 두려움 2개를 적는다.
4. 자주 하는 말 2개를 적는다.
5. 반복 이미지 2개를 적는다.
6. 이 내용을 AI에게 보내 주인공 기준 문서 v1로 정리해달라고 요청한다.
7. 나온 답을 내 문장으로 한 번 더 수정한다.
다음 화부터는 이제 구조가 조금 더 바깥으로 넓어진다.
배경도 생겼고,
주인공도 생겼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은 여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갑자기 “그럼 이제 30화 목차를 짜야 하나?”라는 압박이 오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서는 처음부터 30화가 아니어도 되는 이유,
그리고 5화에서 10화, 15화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연재 목차를 만드는 법을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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