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하면서 만났던 펜트하우스의 아이들과 판잣집의 아이들

by 마음등불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앞둔 채 집에서 빈둥거리던 어느 겨울,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보게된 게시판에서 한 전단지를 봤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우유 배달. 고소득 보장.>


군대를 제대하고 돈이 급했던 나는 내 친한 친구와 그 일을 시작하게 됐다. 겨울방학동안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먹을 우유와 두유를 각 가정으로 배달하는 일이었다. 친구는 트럭을 운전하고, 나는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뛰어다니며 우린 목돈을 번다는 생각에 의기투합하여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곤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하여 배달 주소지를 받은 나와 친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첫 배달지가 당시 우리 지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주소지가 잘못된 거 아니냐며 사장님께 반문하였지만 돌아오는 건 사장님의 씁쓸한 웃음과 냉소였다.


그 아파트에도 저소득층이 사나 보지 뭐.


허름한 옷차림의 우유 배달원이었던 나는 출입구도 겨우 통과했고 로비의 경비원에게 간신히 우유를 전해주고 트럭으로 돌아왔다. 여기 사는 어른들이 과연 자녀가 마실 우유를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할까. 그 고민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 다음 배달지에 도착했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슬레이트 판잣집이었다. 초인종이 고장난 그 집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자 목이 다 늘어난 옷을 입고 꾀죄죄한, 하지만 눈망울만은 빛나던 아이들이 나를 반겼다. 아이들의 뒤로는 바닥에 뒹구는 소줏병과 함께 보호자처럼 보이는 어른이 누워있었고 집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지저분했다. 좀 전의 배달지와 너무 비교되는 환경에 마음이 아파 돌아서려던 찰나 아이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자신들의 사탕을 내게 건내줬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탕을 주머니에 넣은 채 트럭으로 돌아온 나는 결국 그 사탕을 먹지 못했다. 친구와 퇴근하고 자주 가던 술집에서 마셨던 그 날의 소주는 유난히도 썼다. 소주잔에 찰랑이는 그 아이들의 눈동자가 내 마음도 찰랑이게 했다.


십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아이들이 문 앞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처음 보는 우유 배달원인 내게도 따뜻함을 베풀줄 아는 아이들이라면 분명히 좋은 어른이 됐으리라. 길을 가다가 그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그때 너희들이 준 사탕 참 달콤하고 따뜻했다고.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