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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가 Jul 30. 2020

외국발 UX이론의 허상

미제병(美製病)에 걸린 한국의 개발 집단

'Made In U.S.A.'


미국산을 뜻하는 문구이며, 너무도 익숙합니다. 교과목으로 영어를 배우기 전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미제나 일제라면 무조건 찬양하던 시절을 지내온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중장년층이 되었고, 요즘 세대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친구들도 외산 제품이나 각종 브랜드에 환호합니다. 우리가 후진국이었던 그 시절의 선진국. 마냥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과 그 외 국가들. 그로부터 각인된 다양한 가치관. 분명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건만 이놈의 고정관념은 당최 떨쳐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있으며 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을 당연스레 합니다. 부모 세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러한 문화적 유전 탓에,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오해하고 좋은 판단을 함에 있어 방해를 받습니다.


이 같은 세태를 풍자한 개그 코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 개그콘서트 깜빡 홈쇼핑(일명 마데전자)


디자인을 주업으로 삼아 먹고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무와 관련한 용어와 갖가지 이론. 외래어를 걷어내면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만드는 것은 국산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꽤 자주 그리고 많이 물 건너온 것들을 활용합니다. 외국 것을 많이 알고 잘 활용해야 좋은 실무자라 평가받을 수 있으며 그들이 곧 엘리트가 됩니다. 뭔가 있어 보입니다. 공부 좀 했다는 자칭 똑똑한 자들의 글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각 단어들을 따로 검색해가며 읽어야 합니다. 이러니 지식을 전파함에 있어 많은 허들이 발생하지요. 게다가 그런 자들의 대다수는 경험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필요할 때 언제든 '미국발 이론', '미국발 디자인'이라는 방패를 꺼내 듭니다. 참다 참다 미제 실드만 치는 녀석들의 면전에 한마디 던집니다.


"여기 대한민국이야."


벙찐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어차피 한 방 날린 거 이거 저거 따져 묻습니다. "니들이 논리와 근거라 들먹이는 이론들. 그걸 만든 놈들의 경력사항이나 그것이 적용된 프로젝트는 알고 있니?" 쉴 새 없이 떠들던 놈들이 갑자기 벙어리가 됩니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독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외국에서 물 건너온 거라면 정신 못 차리고 기웃대는 꼬락서니 하곤...


대표적인 UI/UX 이론인 엄지영역(the Thumb Zone)


UI/UX 이론을 찾아보면 꽤 쉽게 접할 수 있는 엄지영역에 대한 그림입니다. 모바일 기기를 손에 쥐었을 때 엄지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는 영역을 시각화한 것이죠. 나온 지 오래된 것이고 최근에도 같은 내용이 온라인에 돌아다닙니다. 이런 이론을 읽는 자들. 그것이 언제 작성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따져봅니다. 과연 이것을 따라가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까? 경험한 바 그리고 따져본 바, 엄지영역에 대한 이론은 쓰레기라 판단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죽은 이론'이었습니다. 먼저 해당 이론이 시발한 곳의 사용자와 한국의 사용자는 신체적인 조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손 크기는 애초부터 다르다 - SBS스포츠


분명 우리가 디지털로 경험하는 UI/UX는 그것을 접했던 초기. 그러니까 데스크톱으로 접했을 때 동서양의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동일한 환경 조건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사용자 경험을 했죠. 이때는 같은 이론을 적용해도 큰 문제가 없었으나, 모바일 기기가 등장하고 인치수가 다양해지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 먼저 신체적 조건인 손 크기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 엄지로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이 서양인, 동양인. 각각 다릅니다. 여기에 기존 3~4인치였던 스마트폰이 5인치를 넘어 7인치까지 확장되면서 동서양간 사용자 경험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해당 이론을 제게 들먹이는 작업자들과 끊임없이 의견 다툼을 해왔습니다. 


한국인의 손목 - 엄지 평균 길이, 심지어 줄어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평균 남성의 손크기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저는 작은 손을 갖고 있습니다. 직업 상 스마트폰을 새로 구매할 때 국내 가장 많이 판매된 인치의 제품을 따라 구매하고 있는데, 손이 작다 보니 그 불편함을 정통으로 처맞습니다. 그저 커지기만 합니다. 무거워지고요. 대부분의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쥘 때 엄지손가락의 끝이 화면 정중앙에 위치하도록 잡습니다. 손이 작거나 인치가 큰 기기를 사용 중이라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서 스마트폰을 여러 번 고쳐 쥐어야 합니다. 6인치 이상의 기기에서 제가 쉽게 터치할 수 있는 범위는 전체 스크린의 절반 수준입니다. 두 손으로 사용할 것을 강요당합니다. 만약 스마트폰이 5인치 이하로 작아지는 트렌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의 UX를 버리고 새로운 UI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 사용자를 위한 한국적인 디자인을 한다면 말이죠. 예컨대 중요한 액션이 일어나는 버튼은 상단이 아닌 하단에 주로 배치한다거나...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치가 작던 시절의 iOS, 핵심 버튼(긍정)이 우측 상단에 항상 위치했었다


많은 실무자들이 위의 UI/UX에 갇혀 지냅니다. 그들이 처음 접했던 UI. 이후로는 따로 찾아가며 공부하지 않으니 지식의 정체가 일어나고 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중요한 '다음' 버튼의 위치가 엄지손가락으로 터치하기 힘든 곳에 있습니다. 달리 설명해볼까요? 애초 '엄지영역'에 대한 이론이 당시 실 UI작업을 하면서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취소를 누르기 힘들게 한다' 정도는 대입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상당수의 실무자들이 한국인들의 사정과 인치수가 커졌다는 걸.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작업했다는 겁니다.


"확인 버튼을 꼭 우측 상단에 두어야 할까? 불편하지 않아?"

"이미 많은 사용자들이 중요한 버튼이나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긍정 요소의 버튼의 위치를 우측 상단으로 인식하잖아요. 나쁘지 않은 UI라 생각해요."

"그래? 지금 너의 휴대폰을 확인해 볼래?"


핵심 버튼이 하단 바 형태로 배치/개선되었다 - iOS 13.4


이미 기기의 기본 UI는 인치가 커짐에 따라 UX를 다시 고민해 적용해가고 있는데, 우물 안 개구리 디자이너들은 과거에 봤던 서적, 이론만 떠들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겁니다. UX는 단어 그대로 '사용자 경험'을 의미하는데 본인들의 경험은 뒷전이고 구전 같은 남이 써놓은 글에 의지합니다. "너희들의 경험을 디자인에 녹여, 이론 좀 그만 떠들고"라고 말해줍니다.

 

애플뿐만 아니라 삼성 또한 UI/UX를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 - 삼성 oneUI


마치며.


이외에도 수많은 UX이론 관련 허상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스와이프 기능 활용'이 있죠. 구성의 재미를 주며, 정해진 공간 안에서 가로 스크롤을 두어 다량의 콘텐츠를 보여준다거나 화면을 전환할 때 사용합니다. 디자이너들, 아무 고민 없이 스와이프 기능을 남용합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물으면 한참을 고민하다 "세로 스크롤이 너무 길어져서요." 또는 "영역이 제한적인데 어떡해요?"


참 이상하죠. 세로 스크롤이 더 편한데 말이죠. 심지어 페이지 중간쯤 위치한 스와이프 형태의 콘텐츠를 보려면 사용자는 엄지손가락이 닿는 수준까지 스크롤을 내려야 스와이프 기능을 쓸 수 있습니다. 어차피 스크롤을 해야 해요. 영역이 제한적이라면 무조건 스와이프를 걸게 아니라 구성 자체를 다시 고민해야지요. 그냥 화면 설계를 잘못한 겁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거 이거 저거 짜깁기하면서 만들다 보니 구성이 산으로 가는 거죠.


게다가 모바일 웹 페이지에서의 스와이프 활용. iOS 사파리 사용자라면 꽤 불편합니다. 모바일 사파리는 스와이프로 히스토리 백(뒤로 가기)등의 기능이 작동해요. 스와이프 콘텐츠 보려다가 '뒤로 가기'가 작동해서 페이지 이탈이 일어납니다.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애플은 그들의 웹페이지에 스와이프 기능 활용을 최소한으로 합니다. 주로 영역이 큰 이미지 갤러리 구간에서만 활용하고 대부분을 세로 스크롤로 처리합니다.


UX는 경험의 이론입니다. 글과 영상 따위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데는 많은 무리가 있고, 문화적 그리고 사용자별 편차가 걸림돌이 되죠. 손이 작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인치의 스마트폰과 그에 걸맞은 기능 개발.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고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는 수많은 실무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이라고 뭔가 참고할게 많아서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했을까요? 아마도 제품을 만들면서 수십, 수백 번 자신의 제품이나 프로토타입들을 아이들 손에 쥐어줬었겠죠.


과거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빠르게 흐름을 좇으며, 자신의 경험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의 경험을 대입해 보는 것. 다양한 통계를 살피고 매 프로젝트마다 철저한 리서치를 병행하는 것. UI 디자인을 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핵심과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만든 제품, 서비스를 마주하는 수많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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