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나 깊은 상처를 겪은 이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지내는 모습입니다. SNS에 올라오는 그의 여행 사진, 친구들과의 파티, 행복해 보이는 일상들... 그 사진 한 장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다시금 심장에 박힙니다.
여기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라며 가해자의 소식을 전해오는 '전달자'들입니다. 어제까지 가해자와 함께 나를 욕하던 그들이, 가해자와 사이가 틀어지자 마치 정의로운 고발자가 된 양 "그때 걔가 너에 대해 이런 험담을 했어"라며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습니다. 그들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법망이나 학폭위의 처벌을 피해 갈지 모르지만, 그들이 옮긴 말은 피해자의 가슴에 또 다른 지옥을 만듭니다.
"나는 이렇게 부서진 채로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어떻게 그들은 저토록 평온하고 뻔뻔할 수 있지?"
이 억울함은 곧 집착이 됩니다. 그의 소식을 확인하고, 그가 불행해지기를 빌며, 전달자들이 가져오는 독이 든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데 소중한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마주해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불교의 선문답 중에는 용서의 본질을 꿰뚫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탄잔 스님과 에키도 스님이 함께 길을 가다 물이 불어난 강가를 마주했습니다. 거기엔 비단 옷을 입은 한 젊은 여인이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죠. 탄잔 스님은 주저 없이 여인을 번쩍 업어 강 저편에 내려주었습니다.
수행자가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에키도 스님은 말 한마디 못 하고 씩씩거리며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걷던 에키도 스님이 결국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스님, 어떻게 수행자가 여인을 가까이하고 그렇게 업어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탄잔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을 아까 강가에 내려놓고 왔소만,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상처받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는 이미 사건이라는 강을 건너 자신의 일상으로 가버렸습니다. 나를 배신하고 말을 옮긴 전달자들 역시 "나는 이제 네 편이야"라는 가식적인 위로 뒤에 숨어 자기 갈 길을 갑니다. 그들은 이미 '여인'을 내려놓고 웃고 떠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에키도 스님처럼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분노와 억울함을 등에 업은 채 수개월, 아니 수년의 시간을 걷습니다. 가해자의 SNS를 들여다보거나, 전달자들이 가져오는 험담의 조각들을 맞춰보는 행위는 이미 강 건너로 사라진 그 사람들을 억지로 다시 내 등에 업어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잘 사는지 감시하고, 그들의 배신에 치를 떠느라 내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정작 내가 걸어가야 할 앞길은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용서를 거부하는 이유는 용서가 가해자와 방조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하면 그들의 죄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 사람들 마음만 편하게 해주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탄잔 스님의 가르침을 빌려 말하자면, 용서는 그들을 위한 자비가 아니라 **나의 무거운 등을 비우기 위한 '자기 구원'**입니다. 그들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내 어깨가 너무 아프기 때문에,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전달하는 '독이 든 말'로부터 나를 격리하기 위해서 더 이상 그들을 업고 있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SNS를 확인하고, 전달자의 입술 끝에서 떨어지는 말들에 일희일비하는 동안 당신의 삶은 정지되어 있습니다. 그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고, 그의 불행이 나의 유일한 위안이 된다면 나의 감정 주권은 온전히 그들에게 넘어가 있는 셈입니다. 특히 정의의 사도인 척 다가와 과거의 상처를 생중계하는 이들의 말에 귀를 닫으십시오. 그 소식에 매달리는 것 또한 그들을 등에 업는 일입니다.
이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언제까지 그 사람들과 그들의 비겁한 말들을 내 등에 업고 이 무거운 길을 갈 것인가?"
용서의 여정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을 강가에 두고 오기로 마음먹는 순간, 비로소 당신의 진짜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마음 미션
지금 당신의 등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사람(가해자, 혹은 상처를 전한 친구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적어보세요. "나는 오늘,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그들의 SNS를 보거나 그들의 비겁한 말을 곱씹는 데 낭비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나는 이제 내 등을 비우고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