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용서를 그토록 주저하는 밑바닥에는 한 가지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가 용서하면, 그 사람이 저지른 짓이 '별거 아닌 일'이 되는 것 아닌가요?" 혹은 "잘못한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잖아요"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용서의 정의를 오해한 데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오늘은 용서의 진짜 얼굴인 '감정적 로그아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용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용서가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이해'해 주는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용서는 가해자의 행동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끝까지 잘못된 것입니다. 가해자가 당신에게 준 상처는 여전히 부당하고, 사과받아야 마땅하며,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입니다. 용서는 이 '사실'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비극적인 사실이 오늘의 내 인생을 계속해서 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주는 면죄부가 아니라, 나에게 주는 **'자유 이용권'**입니다.
진정한 용서를 이해하기 위해 '로그아웃'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봅시다. 우리는 앞선 장에서 가해자의 SNS를 보고 소식을 듣는 것이 가해자와 '접속(Sync)'되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용서는 이 지긋지긋한 접속을 종료하는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로그아웃을 한다고 해서 그 웹사이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이트에서 오는 알림이 더 이상 내 화면에 뜨지 않고, 내가 그 사이트의 게시물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어질 뿐입니다. 가해자라는 사이트에서 감정적으로 로그아웃하십시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어떤 뻔뻔한 표정을 짓든 내 인생이라는 화면에는 더 이상 그 소식이 뜨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용서의 실체입니다.
용서하면 가해자가 발을 뻗고 잘 것이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가 반성하든 안 하든, 그것은 그의 업보이고 그의 인생입니다. 당신이 용서하지 않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가 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용서한다고 해서 그의 죄가 씻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용서라는 이름의 로그아웃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분노의 채널'에 접속해 있을 때, 가해자는 역설적으로 당신의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가 준 상처를 면죄해주지 않기 위해 당신의 오늘을 제물로 바치지 마십시오. 당신의 고통이 가해자의 죄를 증명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와의 감정적 연결을 끊고 나면, 비로소 내 삶의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가해자를 미워하고 감시하느라 보지 못했던 나의 꿈,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상처받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진짜 나'의 모습 말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내 마음의 거실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는 일입니다. 그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사실이 내 거실의 분위기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해방'의 시작입니다.
오늘의 마음 미션
나에게 상처 준 사건을 떠올리고 이렇게 선언해 보세요. "그 일은 여전히 잘못된 일이고, 나는 그 일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제 이 사건에서 감정적으로 로그아웃한다."
가해자와 연결된 보이지 않는 끈(SNS, 소문, 추억의 물건 등) 중 오늘 당장 하나만 끊어보세요.
로그아웃한 후 생긴 여유 시간에 오직 나만을 위한 '즐거운 접속' 한 가지를 만들어 보세요.
(예: 좋아하는 작가의 책 읽기, 반려견과 산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