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용서라는 해방

사과라는 문장, 그 너머의 진실

by 자신을사랑하기

제32화. 용서라는 해방: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독립 선언

학교폭력에서 마지막 문턱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바로 '용서'입니다. 많은 피해 학생과 부모님들은 용서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왜 잘못한 건 저쪽인데, 내가 용서까지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하느냐"는 억울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감옥에서 꺼내주는 자비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나'를 스스로 석방하는 해방의 열쇠라는 점입니다.


01. "나는 그 여인을 강가에 두고 왔소만..."

불교의 선문답 중에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탄잔 스님과 에키도 스님이 함께 길을 가다 물이 불어난 강가를 마주했습니다. 거기엔 비단 옷을 입은 한 젊은 여인이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죠. 탄잔 스님은 주저 없이 여인을 번쩍 업어 강 저편에 내려주었습니다.

수행자가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에키도 스님은 말 한마디 못 하고 씩씩거리며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걷던 에키도 스님이 결국 참치 못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스님, 어떻게 수행자가 여인을 가까이하고 그렇게 업어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탄잔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을 아까 강가에 내려놓고 왔소만,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있는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해자는 이미 사건이라는 강을 건너 일상으로 가버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날의 기억, 그날의 분노, 그날의 가해자를 여전히 마음의 등에 업고 수년의 시간을 걷습니다. 에키도 스님처럼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말이죠. 용서는 바로 그 무거운 등을 가볍게 비우고, 강가에 그 고통의 기억을 두고 오는 결단입니다.


02. 업무담당자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3개월의 지옥

사실 저 역시 이 '내려놓음'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온몸으로 겪어낸 적이 있습니다.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며 한 민원인으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폭언에 시달렸던 그때, 제 일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퇴근 후에도 귓가에는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맴돌았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길처럼 무거웠습니다.

'오늘 또 전화가 오면 어쩌지', '그 사람이 학교로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3개월 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차안에 몸을 실으면서도 제 마음은 여전히 어제의 그 전화기 앞에 묶여 있었습니다. 저를 공격했던 그 사람은 이미 전화를 끊고 자기 삶을 살고 있었겠지만, 저는 3개월 동안 그 민원인을 등에 업고 출근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오며 깨달았습니다. 상대를 용서하지 못한 채 품고 있는 독기는 상대를 해치기 전에, 그것을 품고 있는 나의 영혼을 먼저 부식시킨다는 사실을요. 저의 '용서'는 그 민원인의 무례함을 이해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제가 다시 평온하게 출근하고, 다시 제 삶을 사랑하기 위해 그 무거운 사람을 제 등에서 내려놓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03. 용서와 화해는 같은 단어가 아니다

우리가 용서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서=화해'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반드시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야 하거나, 상대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화해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손을 잡는 '양방향'의 약속이지만, 용서는 나 혼자서도 완결할 수 있는 '단방향'의 결단입니다. "네가 나에게 준 상처는 여전히 잘못된 일이고 사과받아야 마땅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일로 내 인생이 망가지게 두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것이 용서의 본질입니다. 탄잔 스님이 여인을 강 저편에 내려놓았듯, 내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나의 새로운 일상을 채우는 독립 선언이 필요할 뿐입니다.


04. 피해자라는 정체성으로부터의 독립

용서의 가장 위대한 지점은 '피해자'라는 고정된 정체성으로부터 탈피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상처 입은 사람이야"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면, 모든 세상이 위험해 보이고 모든 관계가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용서를 통해 사건을 객관화하고 내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면, 아이는 비로소 '상처 입은 피해자'가 아닌 '상처를 극복하고 단단해진 생존자'로 거듭납니다.

사과라는 문장은 가해자가 썼을지 몰라도, 그 문장을 읽고 덮을 권리는 오직 피해자에게 있습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용납하는 인심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치열한 자기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 독립 선언을 마친 아이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가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는 가해자 없는 세상, 오직 자기 자신의 꿈으로 가득 찬 내일로 당당히 걸어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나를 향한 물음]

나는 지금 마음의 등에 그날의 '가해자'를 여전히 업고 걷고 있지는 않나요?

용서가 '상대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나를 위한 탈출구'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까요?

가해자가 강을 건너 멀리 가버리는 동안, 나는 왜 여전히 그 강가에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나요?

본 도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이나 심리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전 11화제31화. 용서라는 이름의 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