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젊은 약자의 순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혜영은 문을 향해 두어 걸음 다가갔다. 그녀는 검은 색 하이힐 끝에 힘을 실었다. 구두의 뒷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창백한 복도를 뱅글뱅글 돌았다. 금속으로 된 문 앞에 서서 혜영은 가볍게 날숨을 쉬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녀는 문고리를 손으로 잡았다. 문고리의 차가운 온도가 그녀의 손으로 전해졌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그녀의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문이 열리고, 문을 경계로 나누어졌던 세계가 혜영의 눈으로 달려 들었다. 세계를 완전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혜영은 뻣뻣하게 굳은 목을 느릿하게 숙였다. 고개를 들고 나서도 그녀는 눈 앞의 것들을 보지 못하고 바로 몸을 뒤로 돌려 문을 닫았다. 손에 힘을 뺀 후 손가락에 걸친 문고리를 살짝 당기자 문이 찰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주 작은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은 행위를 기점으로 혜영의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자신의 증상에 당황하며 그녀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려 입술의 끝에 힘을 주었다.
문을 등지고 선 그녀는 눈동자를 굴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앞쪽에서부터 뒤쪽으로 시선을 이동시켰다. 자신이 누울 수 있을 만큼의 긴 탁자가 있었고 그 뒤편에 놓여있는 의자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탁자 위에는 하얀 종이가 몇 장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널브러져 있었고, 두어 개의 볼펜이 비스듬히 서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볼펜과 아주 가까운 곳에 여섯 개의 손이 있었고, 그 손을 타고 눈을 들어 올리자 자신을 바라보는 네 개의 눈이 있었다. 네 개의 눈에 어린 경계심을 풀기 위해 혜영은 광대를 들어 올렸다. 마치 으르렁거리는 짐승을 대하듯 그녀는 경직된 웃음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의문형으로 끝나는 문장이었지만 말끝을 단호한 저음으로 마무리한 혜영은 자신의 인사 소리로 뇌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척추를 곧게 펴고 자신을 따갑게 찌르는 여섯 개의 시선에 한 번씩 눈을 맞추었다. 혜영의 시선을 받은 주름진 입 하나가 건조한 음성을 냈다, "앉아요".
아까보다 야무진 음성으로 감사의 표현을 한 혜영의 엉덩이는 의자의 끝을 탐색했다. 감으로 자신이 앉을 자리를 얼추 파악한 혜영은 등받이에 완전히 기대지도 않았고, 보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을 만큼 안정적으로 걸터앉았다.
최대한 조심스레 앉으려 한 혜영의 이마에, 순간,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10분 전 화장실에서 헤어스프레이로 잘 마무리해놓은 줄 알았던 앞머리의 한 부분이 혜영의 이마를 때린 것이다. 혜영은 과장된 아픔을 느끼며 눈알을 이마 앞의 머리카락에 고정시키려 애썼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고, 반대로 손가락 끝은 온기를 잃어갔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땀방울이 맺히지는 않을까 생각될 때쯤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들을 인식했다.
허벅지 중간에 맞춰 얌전하게 내려놓은 손이 머리카락으로 이동하려는 힘이 느껴졌고 반대쪽 손은 그것을 제지하려 더 큰 힘을 주었다. 혜영은 혹시나 흘러내린 앞머리 한 가닥이 머리 위로 올라가 주지 않을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울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밧줄이 혜영의 온몸을 결박했다. 앞머리가 약 올리듯 깔깔 웃으며 그녀의 이마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자신 있는 표정과 눈빛을 잃은 혜영은 자신에게 향해 있는 몇 개의 시선을 피한 채 탁자 끄트머리만 응시했다. 탁자는 꽤 멀리 있음에도 날카로운 것에 깊이 긁힌 자국이 눈에 보였다. 흠집의 끝에서 끝으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완료할 즈음에, 메마른 음성은 그녀에게 흠집을 내었다. 그녀는 발발 떨었다.
"1분 간 자기소개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