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푸딩 Sep 06. 2015

엄마의 취미

조물조물, 엄마와 함께 빚다


“엄마, 이게 다 뭐야?”


 김치와 두부, 삶은 고기, 달걀 같은 것들이 커다란 볼에 담겨 있고, 옆에 도마 위에는 하얀 밀가루가 푹 쏟아져 있다. 주방 바닥에 널브러진 만두 재료들을 보니 우리 엄마, 또 시작인가 보다.


 “뭐긴? 만두 만들려고.”

그렇다. 우리 엄마의 취미는 만두 빚기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만두를 직접 빚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엄마는 손이 커서 한 번 만두를 빚었다하면 쟁반으로 다섯 쟁반은 족히 빚는다. 명절이 아니어도 만들고, 명절이면 더 많이 만든다. 엄마가 심심하면 빚는 게 바로 만두다.


 “귀찮게 뭐 하러 만두를 빚어? 사먹으면 되지. 집에서 만든 만두는 만두피가 두꺼워서 맛이 없단 말이야.”

입을 쭉 내밀고 툴툴거리는 나를 엄마는 새침하게 째려보며 만두피를 만들 반죽을 만든다. 오늘은 반죽이 좀 질게 되었는지 엄마가 손가락에 들러붙은 반죽을 떼었다.


 “계집애. 먹기 싫음 먹지 마라. 너 빼고 우리끼리 먹으면 되니까.”

맛없다고 했지만 나를 빼고 먹는다는 엄마의 말에 괜히 심통이 났다. 그래서 입을 비죽거리고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엄마가 만두를 빚으면 옆에 앉아서 수다를 떨며 같이 빚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를 닮아 나도 만두를 꽤 잘 빚었다. 엄마의 만두 빚는 속도에는 못 미쳐 엄마가 쟁반으로 세 개를 채울 시간에 나는 한 개 정도 채웠다. 그래도 모양이 꽤 그럴 듯해서 “와, 엄마 나도 엄마처럼 만두 잘 빚어서 나중에 나처럼 예쁜 딸 낳겠다, 그렇지?”하고 능청을 떨고는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귀찮기도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굳이 직접 만드는 엄마가 답답해서 만두를 빚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쌩 하고 방으로 들어와 버린 것 때문인지 목구멍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 같은 찜찜함 느껴졌으나 금세 지나갔다. 다시 주방으로 나가 엄마 옆에 앉아 만두를 빚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엄마아빠가 출근하고 나서 혼자 집에 있었다.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냉장고를 뒤져보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사먹을까 하던 중에 무심코 냉동실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엄마가 지난 저녁에 빚어둔 만두가 쟁반 가득 있었다. 만두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똑같이 생긴 듯하면서도 하나하나 생김새가 달랐다. 동글동글, 귀엽고 복스럽게 생긴 만두.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만두는 마치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 무대 위로 오르기 전, 분장을 마친 캐릭터 같았다. 몇 초간 만두와 어색하게 눈을 맞추다가, 몇 개 집어서 찜 솥에 넣었다.


어릴 땐 사먹는 만두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투박해도 집에서 만든 만두가 좋다.


 만두가 다 익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았다. 만두에 묻었던 밀가루가 내 손에도 묻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생각났다. 늘 만두를 만들면 밀가루 때문에 하얗게 되던 엄마의 손. 지금 내 손은 엄마의 손과 다르지 않다.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시장이 반찬인 것인지 감동이 반찬인 것인지, 오랜만에 먹은 찐 만두는 참 맛이 있었다. 얇은 만두피가 익어서 반투명으로 변해서 만두의 소를 은근히 비춰주는데 보고 있으니 먹으면서도 절로 침이 고였다. 내 말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지 엄마가 만두피를 얇게 만들었나 보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 입에 쓰다는 말은 누가 했던가. 지금 내 입으로 쉴 새 없이 들어가는 요 만두, 속은 알차서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만두이면서도 얇고 부드러운 만두피 덕분에 입에서 살살 녹는 만두다. 만두를 다 먹어갈 때쯤, 하나의 다짐 같은 것이 마음에 남았다.  


만두를 쪄서 숟가락으로 갈라 퍼먹는다. 꿀맛!

   

 그날 저녁, 퇴근한 엄마는 남은 만두소를 가지고 다시 만두를 빚는다.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하얀 밀가루를 볼에 쏟고 반죽을 시작한다. 반죽을 주무르는 엄마의 모습이 힘차고 경쾌하다. 다 만든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똑똑 썰고 그것을 밀가루를 쏟아 놓은 쟁반에 데굴데굴 굴린다. 하얗게 밀가루를 뒤집어씌우고 밀대로 빡빡 밀어서 만두피를 만든다.     


 그 모습이 어찌나 활기가 있어 보이던지. 엄마의 모습을 보니 힘이 나기도 하고, 만두를 같이 만들면 이전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쪼르르 다가가 엄마 옆에 붙어 앉아 가만히 있는데, 엄마가 밀가루가 뒤범벅이 된 손에 만두피를 얹고 나에게 내밀었다.     


“딸,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해봐.”     


  조금은 민망한 듯 웃으며 엄마가 넘겨준 만두피를 다시 받은 나는 숟가락을 손에 들고 만두피에 소를 가득 넣고 만두를 빚는다. 만두의 밑바닥에 하얀 밀가루를 한 번 더 콕, 찍고 마무리. 아, 만두 빚기는 미래의 나의 취미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빚은 동글동글하고 복스러운 만두가 날 보며 엄마 미소를 짓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리의 국물 떡볶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