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쓸 이, 그들만의 훈훈하고 이상한(?) 세계에 방문하다
26살이 되어가고, 하반기 공채 시즌이 끝나 다음 해 상반기를 씁쓸하게 기약해야 했던 겨울이었다. 작가가 될까 생각하면 화들짝 놀라 도리질을 하면서도, 취업보다는 글을 쓰는 것으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때였다. 전공자가 아니라는 자격지심이 있었고, 무엇이든 이론 학습을 선행하고 실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겁을 먹었던 때. 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채용공고를 뒤지는 만큼, 글쓰기와 관련된 단어를 검색하며 정보를 찾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며칠,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문학강의나 문예공모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용한 사이트였다. 보물을 찾은 뒤 비밀 장소에 넣어두고는 그것이 온전히 있는지 거듭 살피는 사람처럼, 커뮤니티를 습관적으로 방문했다. 그러다 한 문예 모임에서 글쓰기 수업을 운영한다는 공고 글을 보았다. 수업을 등록하기 전 맛보기 강좌 또한 진행한다고 써 있었다. 망설임 없이 휴대폰 번호를 남겼고, 일단 맛보기 강좌를 들어보기로 했다. 나라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문제로 떠들썩했고,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새로운 수업을 듣게 된 데에 마음이 뒤숭숭해 있었다.
넉살이 좋다 할까, 적극적인 태도의 중년 여성과 통화를 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하려 했던 강좌가 저녁으로 미뤄졌다고 했다. 그녀는 주소를 불러줄 테니 강의실로 찾아오라 했다. 알겠다 하고선 주소를 인터넷 창에 검색했다. 길을 헤매느라 수업에 늦고 싶지 않기도 했고, 별 생각 없이 수강신청을 하고서는 이제야 겁이 난 것이다. 건물 사진이나 주변 장소의 모습을 익히기 위해 거리뷰 정보를 클릭했다. 거기에는 운영되지 않는 공장인 듯한 건물의 일부와 담이 보였다. 아직 초면도 아닌 중년 여성이 불러준 주소는 잘못되었거나 혹은 내가 잘못 들었거나 혹은...... 나는 무서운 상상을 하며 당황했다.
취업이 어렵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고 역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수업에 참석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에서 내려서는 무슨 용기였는지 휴대폰으로 열심히 검색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공구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그곳에는, 공휴일이어서 철물점 단 한 곳도 열려있지 않았다. 건장한 남자들이 몇몇 무리 지어 지나갈 때마다 머리털이 서고 어깨가 움츠러들었으나 아무런 사고도 겪지 않고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지역신문의 간판이 달린 2층짜리 건물이었다. 거리뷰로 보았던 장면은 건물의 맞은편이었다.
경계심으로 무장한 채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하얀 페인트칠이 된 벽과,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칠판, 칠판 상단에 매달린 화려한 색깔의 촌스러운 글자들이 적힌 현수막,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강의실이라기보다는 허름한 회의실 같았다. 나쁜 일을 공모해야 할 것 같은 낡은 공간이었다. 문화사업, 예술사업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구석에는 컴퓨터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중년의 여자 두어 명이 컴퓨터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다과를 준비하다가 나를 반겼다. 다짜고짜 수강신청을 한 것은 본인이었으면서, 어리둥절했다. 조잡한 디자인의 ‘무료’ 문집을 받아 든 채 테이블에 앉게 된 나는 그때부터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곧 사람들이 모였다. 보통 중년층의 사람들이었다. 인터넷 검색 창에 검색해봐도 모를 무명작가들이 몇몇 있었고, 기타를 어깨에 멘 어두운 표정의 작곡가, 대기업에 다니면서 자기만족을 위해 여가시간을 글쓰기로 보내려는 사람, 잘 웃지 않는 젊은 여자 시인, 대조적으로 밝아 보이는 스피치 강사도 있었다. 내가 가장 어렸고, 그 자리는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덩치의 나는 그 좁은 공간에서 티 나지 않게 나갈 수가 없었다. 테이블에는 귤과 과자 등이 담긴 커다란 쟁반이 있었고,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두 개 놓였다. 이윽고 그 위에 어묵탕이 올려졌다. 어색하게 그리고 공손하게 웃으며 집에 언제 갈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맛보기 강좌(혹은 행사)가 시작되었다. 분위기는 훈훈했다. 자신이 이뤄놓은 생의 작은 업적 따위를 서로 공치사해주는 자리였다. 그 모임에서는 모두 대단하고 장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의 소설, 아주 좋았습니다.”, “회사에서 정말 좋은 상사이실 것 같네요.” 등의 칭찬이 오갔다. 진정으로 뭘 알고 하는 말인지, 그저 인사치레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나는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사회자가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자리에서, 이뤄놓은 것이 없는 나에게는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 무한한 가능성의 강세령 씨”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민망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배 나온 중년이 선보이는 어설픈 마술을 보고 물개 박수를 쳤다. 파란 빛의 색안경을 쓴 여성이 눈을 감고 시낭송을 하는 것을 한 구절씩 따라 했다. 감상에 취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웃었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강의가 무르익었다. 그중 가장 늙어 보이는, 트로트 전문 작사가가 강의를 시작했다. 멜로디는 몰라도 제목은 나도 들어본 듯한 노래들을 작사한 사람이라 했다. 작사가는 점잖은 목소리로 문예인으로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일곱 항목을 충족하는 한 가지의 일이 글쓰기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1) 손쉬운 일이고 또 작은 일
2) 하고 싶을 때 언제나 할 수 있는 일
3)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4)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5) 남에게 기쁨이나 위로를 주는 일
6)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는 일
7) 큰 돈 안 들거나 경비가 나오는 일
위의 일곱 가지에 적용되는 일이 나에게 있어 글쓰기인지 마음속으로 꼽아보니, 맞는 듯 아닌 듯도 하다.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생각해 볼 문제였다(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며 글쓰기가 저 일곱 가지를 충족하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역시나 아직도 맞는 듯, 아닌 듯도 하다). 작사가의 수업을 듣고나니, 이상한 수업을 듣느라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이 낯선 곳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으면서도, 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마음이 편해져 어디서 사온 지 모를 수상한 어묵을 먹고, 귤을 까먹고, 어른들이 주는 술을 기꺼이 몇 잔 마셨다. 뒤풀이 시간 속에서도 다시 어색한 공치사, 그리고 상대방을 신경 쓰는 겸손의 말들이 오간 후, 시간이 늦어 모임은 파했다. 나는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한 소설가의 차를 타게 되었다. 거절하고 싶었으나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이 더 완강했다. 들어도 읽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 소설의 탄생 과정을 들으며 집 앞에 도착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차도 태워준 소설가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갔다.
맛보기 강좌 이후 시간이 여의치 않아 본 강의는 수강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 날 만났던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할 이유도 말끔히 사라졌다. 아쉽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이후 이상한 곳에 다녀왔다는 생각에, 가끔은 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문집이 책꽂이에 꽂혀있어, 내가 그 곳을 다녀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그들만의 세계. 아마도, 내가 다녀온 그곳과 비슷한 곳이 무수하게 존재할 것이다.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나,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만족이나 혹은 그들 안에서의 인정만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는 문화인들(나 또한 무의식 속에 그러한 생각을 품고, 만족하려들지 모른다). 스스로 만족하고 서로에게 건성으로 칭찬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건대 그들이 만족하면 그것으로 '그들에게는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그들은 그들만의 예술 세계에서 만족하고, 활발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학을 탐닉하고 있다.
드물게 겪을 수있는, 지나고 보니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