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영화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울렸던 노랫소리입니다.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장롱 안, 식탁 밑, 소파 뒤에 숨었던 기억, 있으신가요? 보통은 술래에게 잡히거나, 술래를 피해 잘만 빠져나오면 게임이 끝납니다. 그러나 여기, 몇 년간 숨어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술래잡기>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 성수는 오래전에 연을 끊었던 형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이 일로 처음으로 찾아간 형의 집, 성수는 문 옆에 적힌 이상한 기호를 발견합니다. 네모 1, 세모 1, 동그라미 1, 여자 하나, 남자 하나, 아이 하나. 호구 조사를 방불케 하는 이 기호들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요?
제발, 그 사람한테 제 딸 좀 그만 훔쳐보라고 하세요!
의문의 기호들로 잔뜩 신경이 쏠려있는 성수에게 형의 이웃집에서 홀로 딸을 키우고 있던 주희가 부탁합니다. 제발 형 좀 말려달라고. 집에 돌아온 성수, 심각한 그의 표정을 짓자, 아이들이 말합니다.
아까 그 애가 그러는데, 그 아파트에 빈방들이 많은데, 거기에 집 없는 아저씨들이 그냥 들어와 산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형의 아파트를 다녀온 뒤, 성수의 가족들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차장, 엘리베이터, 놀이터까지. 그들이 가는 곳마다 검은 헬멧에, 두꺼운 회색 잠바를 입고, 장우산을 손에 든 남자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검은 헬멧은 어른들이 없는 틈을 타 현관문 도어락을 누르며 성수의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집에 온 성수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자신의 집 옆에도 네모 1, 세모 1, 동그라미 2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검은 헬멧의 정체가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형이라고 생각한 성수는 곧장 낡은 아파트로 달려갑니다. 또다시 검은 헬멧을 만난 성수는 달리고 달려 주희의 집으로 몸으로 숨깁니다. 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며 주변을 찬찬히 살피는 성수, 그런데 이 집에 이상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방 한편을 장식한 수 십 대의 휴대폰, 그 안에는 자신이 분실했던 휴대폰도 있었습니다. 이를 본 성수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그때 장롱에서 무언가 튀어나왔습니다. 랩에 돌돌 말려 있는 형의 주검. 그제야 범인을 눈치챈 성수는 집으로 달려갑니다. 너무 늦기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주희는 이미 그때 딸의 손을 잡고 성수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성수의 가족들은 무사할까요?
2009년, 실제로 초인종 옆에 이상한 기호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민원을 넣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어서 ‘도시 괴담’, ‘초인종 괴담’이라는 소리까지 나돌았습니다. 집 옆에 있는 의문의 기호들을 본 사람들은 ‘이기호가 집 안에 누가 사는지를 표기해 놓은 것이 아니냐’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 돋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괴담일 뿐,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숨바꼭질>은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단절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속에 ‘누군가 내 집에 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주었던 겁니다. 그리고 영화는 집주인을 죽여 집을 마련하는 주희, 그리고 형의 자리를 빼앗아 안락한 집을 마련한 성수, 감독은 두 인물을 통해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내 집 마련,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목표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뒤에 ‘꿈’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누구에게는 이루지 못했거나, 이룰 수 없는, 한낱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걸까요?
서울에 사는 청년(만 19세~34세) 5명 중 1 명은 주거 빈곤층이라는 서울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주거 빈곤이란 지하나 옥탑, 고시원, 비닐하우스와 같은 기준 미달에 해당하는 주거 환경을 뜻합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서울지역 청년 주거 빈곤율이 2000년 31.2%에서 2010년 36.3% 로 그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국 평균 14.8%의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주거 빈곤뿐만 아니라 집에 대한 부담도 훨씬 늘었습니다. 서울시 의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서울 청년 가구의 15.2%는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고, 54%는 전세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그 수치는 각각 12.6%와 40.3%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월세는 28%에서 45.5%로 가장 많이 늘었습니다. 2012년 기준, 서울 청년 가구 중 주거비가 소득의 30% 이상인 가구가 69.9%라고 합니다.
집이 없어서 힘든 사람들, 그렇다면 내 집이 있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요?
명의만 내 집이지 실제 소유자가 은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경우입니다. 이들 중, 대출을 갚느라 정작 수중에 가진 돈이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하우스 푸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소득의 20% 이상을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는데 쓰면 하우스 푸어로 분류되는데, 1 주택 보유자 기준으로 2013년에만 248만 가구가 여기에 속했습니다. 전년도보다 17만 가구가 더 증가한 수치입니다. 전체 비율로 따졌을 때, 29.1%가 하우스 푸어인데, 이 중 59%가 40-50대였습니다.
집이 없는 청년층은 월세를 내는데, 집이 있는 중년층은 대출을 갚는데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 이러다 주희와 성수처럼 남의 자리를 빼앗지 않는 이상 온전한 내 집을 가지기 힘들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주택 문제, 전 세계 모든 도시들이 안고 있는 숙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한탄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택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독일은 집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내 집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독일인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을 소유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43%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국가나 민간에서 제공한 임대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임차인의 권리가 존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무리해서 집을 구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계약 기간 2년이 끝나갈 때쯤이면 자연스레 집주인 전화를 받는 게 두려워집니다. 월세나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집주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도, 이 문제로 세입자를 내쫓을 수도 없습니다.
집주인이 집세를 올리기 위해서는 시에서 제공하는 임대료 기준표나 차임 정보은행 자료, 전문가 감정서, 또는 3개 이상의 주택 차임 현황을 근거로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입자를 내보내려 계약상 의무를 져버렸거나, 임대인의 가족이 집이 필요하거나, 건물이 오래돼 수리가 필요한 경우 등으로 제한합니다. 이러한 제도 덕분에 독일 GEWOS 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세입자 평균 거주 기간은 12.8년이며, 20년 이상 같은 집에 산 세입자만 22.7%라고 합니다. 임대차 기간 2년이 지나면 집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는 우리와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만 돼도 살만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작년에 독일에서는 의미 있는 법이 통과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임대료 10% 이상 올릴 수 없습니다
주택 임대료를 지역 평균가의 1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임대료 상한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최근 세계 경제 침체로 낮은 임금 상승률과 높아지는 실업률을 우려해 서민을 위한 대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임대료 상한제에 대해 헤르코 마스 법무장관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임대 주택은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안락한 가정이다. 임대료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게 (집주인의) 유일한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 해도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 새로 이사 온 집에 적응할만하면 나가야 하는 세입자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영화의 결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형이 아니라 주희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성수는 곧바로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이미, 아내는 주희의 손에 쓰러져 있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아빠를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이야! 왜 자꾸 남의 집에서 난리야
성수의 등장에 주희는 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휩싸여 더욱더 광기를 폭발합니다. 그때, 라이터를 켜는 성수, 곧이어 불 길이 온 집을 삼키기 시작합니다. 성수의 목을 조르던 주희는 집이 망가지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며 불길을 잡으러 그 속으로 뛰어듭니다. 자신의 옷자락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주희는 집과 함께 불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건이 종결되고, 성수는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을까요? 엄마도, 성수의 가족들도 떠난 집에 홀로 남겨진 주희의 딸, 아파트 벽장에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남이 살고 있는 집에 몸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사람들은 몰래 함께 살다가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마치 올빼미 새끼처럼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이대로 놔둔다면 집을 차지하기 위한 주희 모녀의 비극이 언젠가 벌어 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신은 안전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