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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따 Aug 02. 2016

히말라야를 짊어진 사람들

여섯 번째 영화 <히말라야>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새 하얀 눈이 1년 내내 머물고 있는 곳, 히말라야를 평생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빙하를 해쳐 길을 만들어야 하고, 산소가 희박해져 종종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며,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끝도 없이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여행을 마다하고 히말라야로 향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번째 영화 <히말라야>입니다.




산은 내 운명 

 

나는 그게 안 되는 인간이라고, 나 박무택이는 이제 최수영, 니라는 산에서 내려 갈라니까


5년간 만난 여자 친구 대신 산을 택한 박무택은 엄홍길 대장과 함께 산에 오르기 위해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냅니다. 그렇게 박무택은 히말라야 칸첸중가를 엄홍길 대장과 함께 오릅니다. 계속되는 악천후, 속출하는 부상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박무택은 엄홍길 대장의 신임을 얻습니다. 칸첸중가를 오르고,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세계 최초 16좌 완등이라는 꿈을 함께 키워나갑니다.


                                                

제발 내려놓고, 아빠 노릇, 남편 노릇, 그게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산이 전부였던 엄홍길 대장. 그러나 사고로 다리에 문제가 생기면서 산악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박무택에게 대장 자리를 맡기고, 엄홍길 대장은 남편으로, 아빠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휴먼원정대, 그 위대한 등반

 

2004년, 엄홍길 대장을 대신해 히말라야를 오르는 박무택 대장. 하지만 낭떠러지에 떨어진 대원을 구하는 도중 고글이 벗겨지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설원 위에 반사된 자외선으로 그는 순식간에 시력을 잃습니다. 짐이 되기 싫었던 박무택은 동료를 보내고 홀로 산에 남습니다. 열악한 기상 상황에 아무도 선뜻 구조를 나서지 못하는 상황, 홀로 죽어가는 박무택을 위해 친구 박정복은 다시 산을 오릅니다. 결국 박정복은 박무택의 마지막을 지키며, 히말라야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래, 내려오자, 내려와서 집에 가야지, 부모님도 만나고, 수영이도 만나고

 


료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잠든 세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휴먼 원정대’를 만듭니다. 정상에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닌, 어떤 명예도, 보상도 돌아오지 않는 등반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이들의 등반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는 눈보라에 길이 막히고, 부상자는 늘어났으며, 가까스로 발견한 박무택의 시신은 생각보다 무거워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남편의 시신 때문에 대원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은 박무택의 아내 최수영은 결국 시신을 두고 오라는 말을 합니다.  

 

대장님, 오빠가 산을 떠나고 싶지 않은가 봐요. 오빠는 정복 선배랑, 재현이랑 같이 있고 싶을 거예요. 그러니까 더 이상 무리하지 말고 그냥 내려오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비록 대원들의 시신을 가져오는 것은 실패했지만, 엄홍길 대장은 개인의 꿈과 명예가 아닌, 사람을 위한 등반으로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 엄홍길 대장은 박무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산을 올랐고, 그렇게 세계 최초 16좌 완등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이야기, 포터와 셰르파

 

365일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그래서인지 히말라야는 인간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도전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영화 <히말라야>가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 역시, 극한 조건을 뚫고, 오랜 시간을 버티고 버티며 끝내 목적을 달성한 산악인들의 의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등정이 그들의 힘만으로 만 가능했던 일이었을까요?

 

영화에서 엄홍길 대장이 악천후 속에서 칸첸중가를 오를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내가 셰르파 둘을 데리고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아 다시 히말라야로 갈 때,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짐을 나르는 장면이 흘러나옵니다. 이처럼 등정의 영예 뒤에는 그들을 위해 무거운 짐을 나르는 포터와 산을 안내하는 셰르파가 있습니다.


 

산악인들처럼 가볍고 따뜻한 등산복도, 고급 장비도 없이 이들은 허름한 옷과 신발로 수십 kg의 짐을 지고, 수천 m의 언덕을 오릅니다. 뜨거운 햇볕에 검게 그을린 살갗, 무거운 짐으로 단련된 단단한 근육이 그들의 삶의 여정을 대신 말해줍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꾸리고, 미리 올라가 길을 만들고, 정상에 오른 산악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까지, 모두 이들이 하는 일입니다.

 

등반 한 번에 얼마나 많은 포터들이 필요할까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을 했던 오은선 대장 뒤에는 그녀의 정상 등정을 책임지는 셰르파 5명과 120명의 포터가 있었습니다. 엄홍길 대장의 원정대도 베이스캠프까지 11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짐을 옮긴 적이 있습니다. 이 중 식량만 5톤에 달했는데, 이를 운반하기 위해 고용된 포터가 150명, 야크는 180마리에 달했습니다. 에베레스트에 잠든 대원을 찾기 위한 ‘휴먼원정대’ 역시 셰르파와 포터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들은 슈퍼맨이 아닙니다

 


2014년,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눈보라로 여행객들이 고립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네팔 정부는 외국인 등산객을 ‘가장 먼저’ 구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결과 생존자 70명, 사망자 25명, 사망자의 절반은 포터, 셰르파, 그리고 요리사였습니다. 당시, 구조대원이 눈 속에 파묻힌 희생자들을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희생된 네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옷과 장비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몇 사람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코트를 입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눈보라 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할만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유독 네팔 사람들이 많이 죽은 이유가 모두 이것 때문입니다

 

한 해에 얼마나 많은 포터와 셰르파들이 목숨을 잃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외국인들의 사고에는 전 세계가 주목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에 오르는 사람만 1년에 20만 명. 매년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셰르파의 상황은 어쩐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이들의 ‘목숨 값’에 책정된 금액이 턱도 없이 낮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을 위해서는 1인당 5만 달러, 3주짜리 트레킹을 하려면 2,400달러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셰르파들은 1년에 고작 500만 원 정도의 돈을 법니다. 그리고 포터에게 떨어지는 돈은 하루 14,000원이 전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3만 명 정도가 네팔로 향합니다. 네팔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히말라야 트레킹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어서 오십시오. 여기에서 한국 음식을 팝니다. 1. 한국 라면 2. 김치찌개 3. 백숙 4. 김치 5. 기타

 

해발 2000m의 히말라야에서도 우리나라 음식이 메뉴에 올라 와 있습니다. 김치나 뜨거운 국물이 없으면 못 견디는 까다로운 입맛이 히말라야에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수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할까요? 에베레스트에서 먹는다고 가정하면, 서울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김치를 나르고, 카트만두에서 트렉킹이 시작되는 루클라까지 밥과 김치, 조리도구를 날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나르는 것은 모두 포터들의 몫입니다.

 


동반자를 위한 우리의 약속

 

델꼬 가야 캅니더, 정혁이형.. 같이 왔으면 같이 돌아가야카는기지 예? 우째 이 추운데…


엄홍길 대장이 처음 박무택 대원을 만난 곳이 바로 히말라야입니다. 칸첸중가를 오르던 중 동료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박무택은 악천후 속에서도 시신을 데려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 때, 박무택이 했던 말이 바로 ‘함께’였습니다. 엄홍길 대장이 휴먼 원정대를 꾸려 박무택의 시신을 찾으러 갔던 이유 역시 ‘동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포터나 셰르파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만약, 그들이 당신의 친구라면 그들을 위해 작은 배려를 해주세요. 



<포터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수칙>

 

1. 포터들에게 계절과 고도에 맞는 방한, 방수 복장을 제공해 주세요.

2. 보온을 위한 침구와 숙소, 식량과 따뜻한 물이 제공해 주세요.

3. 포터들의 사고와 부상 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포터를 위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해 주세요.

4. 포터들에게 심각한 질병이 찾아올 경우, 반드시 안전한 방법으로 하산해 치료를 받게 해주세요.

5. 포터들의 짐은 네팔 30kg, 킬리만자로 20kg, 페루/파키스탄 25kg을 넘지 않도록 해주세요.

6. 반드시 16세가 넘는 포터를 고용해 주세요.      

 

히말라야에서 진정한 내 모습과 함께, 사람도 찾는다면 이보다 더 뜻깊은 여행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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