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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Mar 31. 2024

일 년이 지나 쓰고 있는 캐나다 응급처치 강사 도전기

시간 참 빠르다. 그리고 지나서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작년 10월 이후로 몇 달을 브런치에 오지 않았다. 캐나다의 생활이 끝나 한국에 돌아왔고, 여러 정리를 해야만 했고, 새로운 '한국에서의 삶' 또한 준비해야만 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돌아오지 않은 핑계를 대자면 '바빴다'라고 할 수 있겠다.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은지 몇 주가 지났을 때는 잊혀가는 글쓰기 습관에 아쉬웠고, 두세 달이 넘었을 때에는 '이젠 쓸 일상이 기억에 없다'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쓸 글감이 머릿속에서 정리된다. 남겨놓고 싶은 이야기가, 그 순간이 아직 남아있었다. 


잠시 해당 매거진의 첫 글을 요약해 보자면, 글을 적었을 당시가 작년 4월이다. 그땐 영어에 막 익숙해지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을 때였다. 한화로 약 70 만원 격인 응급처치 강사 자격증 과정을 이제 막 신청했고, 해당 과정의 L 강사님은 내가 돈을 입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줬다. 


신청서에는 내 이름을 적게 되어있는데, 나는 영어 이름을 따로 쓰지 않고 있었으니 내 이름은 캐나다에서 '외국인'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준다. 외국인이라 전화하셨나? 지금 생각해 보면 캐나다에는 여러 이름이 있으니 내가 외국인이라 전화했기보단, 혹시나 일반 과정을 잘못 알고 신청했을까 걱정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영어 대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몇몇 단어를 놓치더라도 맥락으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어느 부분을 놓쳤다'는 식으로 되짚어 물어가며 대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역시, 현지인과의 영어 전화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듯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L 강사님은 나에게 강좌 신청 이유를 물었다. 당장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격에 있는지, 과정 비용을 인지하고 있는지 등등. (아마 이러한 확인 전화의 배경에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나는 혹시나 영어가 능통하지 못한 점이 단점으로 비칠까 봐 약간 겁을 먹고 있었다. 또한 캐나다에 머물 것도 아니고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 캐나다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딴다는 게, 돈낭비일지 아닐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저 일반인 과정을 들을 당시 강하게 생각했던 '이런 강의를 하는 사람은 어떤 강사 과정을 거쳤을까?'라는 궁금증에 빠져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여 대답했다. 말을 차분히 해서 너무 어리숙하지 않게끔 보이려 노력했다. 


"저는 한국에서 응급구조사로 일했고, 지금은 캐나다에서 쉬고 있습니다. 솔직히 해당 자격증을 따서 당장 캐나다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한국에서는 종종 심폐소생술 강의 보조를 하긴 했는데, 그걸로 강의 경력이 있다 말하기는 애매하고... 일단 캐나다에서 몇 달 전에 응급처치 일반인 과정을 따면서 강사 과정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너무 궁금하고 배워보고 싶었어요. 지금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과정 참가가 어려울까요?" 


나는 한껏 나름의 포장을 했다. 응급구조사로 병원에서 일했었다는 점, 심폐소생술 강의 보조도 여러 차례 했다는 점을 얘기했다. 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내용 좀 아는 일반인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은데, 당시에는 거절당할까 봐 내 몸집 부풀리기를 했던 모양이다. 이 뒤에도 항상 내 소개를 할 때에는 '한국에서 응급구조사로 병원의 응급실에서 몇 년을 일했다'라는 멘트를 빼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내용은 알아. 잘할 수 있어. 언어가 안 돼서 답답한 거야.'라는 태도, 지금 생각하면 민망할 뿐이다. 


"전혀 문제없어요! 다만 가격도 그렇고 기간도 걸리는 과정이라 혹시나 필요 없는 교육 과정을 신청한 것일까 봐 걱정이 되어 확인 연락을 한 거예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걱정하지 마세요."


강사님의 처음 의심쩍은 목소리에서 친절한 목소리로 변하는 순간 나도 긴장이 탁 풀렸다. 나에겐 당시에 '강사 과정이라는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캐나다까지 와서 돈도 벌지 않고 영어에게 집중한 목표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핵심 목표 기준이 잡혀있었다. 그래서 더욱 해당 과정을 신청함으로써 한 발을 내딛는 듯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친절한 대답 이후로 대화를 이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메일에도 썼다시피 영어가 능통하진 못해요. 그래서 과정 진행에 방해를 할까 봐 걱정이 되긴 해요."


"걱정 말아요. 해당 과정에 탈락자는 없을 거예요. 저와 끝까지 하면 돼요. 어려운 것은 언제나 물어보면 되고요. 영어는 문제가 아니에요. 어차피 당신은 이미 한국에서 응급구조사로 일도 했으니 내용은 다 알 거예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니까, 영어 실력은 지금 저와 통화하는 정도로 봐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당신은 내 말을 알아듣고 있고, 나도 당신의 말을 완벽히 알아듣고 있어요."


결국은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이 대답이 이후 영어, 그리고 남은 캐나다 생활의 핵심이 되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조금 이후의 일이지만 말이다. 고슴도치같이 자꾸 몸집을 부풀리며 나를 포장하여 보이던 습관도 한참은 더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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