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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근 Jul 01. 2018

나를 나답게 만드는 존재에 대하여,


비가 내리고 있었다. 7월이 시작되었구나 나직이 말했다. 나는 썩 기쁘지 못했다. 꿉꿉함에 기지개를 켰다. 얼른 해내야 되는 일 몇 가지가 생각났다. 잠시 미뤄둘까 고민했지만 결국 하루 종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따금씩 정신을 차리고 벽걸이 시계만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너무나 달랐다. 무엇이 더 빠르고 느린지 가늠할 수 없었다. 떨어진 빗물이 모여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마냥 오늘이 지나갔다.


당최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하늘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봤다. 비와 함께 깡그리 씻겨 내려갔으면 좋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언가에 대한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에 대하여. 누군가를 향했던 괜한 미움과 질투에 대하여. 이기적이었던 나쁜 마음들에 대하여. 서로에게 남기고 말았던 아픔과 생채기들에 대하여.


여전히 빗소리가 들린다. 잊어야 할 것들은 애써 기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굳이 떠올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때마침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향기가 생각났다. 만나자고 약속했던 친구들의 얼굴과 내가 즐겁게 해내고 있는 일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존재들이었다. 이제는 조금 힘을 내도 되겠다 싶었다. 비가 그치기 전에 맥주를 한 잔 마셔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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