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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Dec 14. 2021

나의 과거는 나의 현재를 견디게 해 준다

얼마 전 형이 나를 데려다주며 말했다.

동생아, 순진무구했던 네 스무 살에 군대서 겪은 상처는 너를 그만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어.

난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니 형이 힘주어 말했다.

그 덕에 인간 이동영의 멘탈이 일찍이
그만큼 강해진 거라고 생각해.
출처: SBS 집사부일체

연극을 취미로 배울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나란 인간의 캐릭터를 인생그래프로 그린 후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20대 초반 군 시절보다 더 낮은 '불행' 수치는 그 전후로 없었다. 앞으로(미래에)도 그보다 힘들 일은 없을 거라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다.


시간이 가고 내 나이가 들면 자연히 있을 가족이별마저도 스무 살 적 내 상처와 괴로움 같은 감정들보다 예상 불행 수치가 높지 않았다.


막상 닥치면 다를 수는 있겠으나 현재로 어떤 사건도 날 정신적으로 무너뜨리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군대에서 실탄이 든 총을 나 자신에게 겨누며 홀로 펑펑 울었던 그 당시보다 더 힘든 일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날 해치고 싶을 만큼의 상처 가득한 과거 사건과 상흔은 그 무엇도 나를 해치지 못하게 만든 내 인생의 역설로 남아있다. 나는 여전히 소심하게 일희일비하는 면은 없지 않아 있어도 크게 확 무너지는 법은 잘 없다. 더 나쁠 수 없는 과거 덕에 현재를 so-so 하게 견디고 버티며 살고 있는 거다.  


한동안 내 모든 감정의 근원으로 외부를 지목하곤 했다. 툭하면 내 안에서 답을 찾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길 때면 남 탓, 환경 탓, 운 탓으로 일관해 원인을 밖으로 돌리기에급급했다. 세상이 나에게만 그런 것 같았고, 나는 그 틀 안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런데 이를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란 걸 늦게서야 알았다.

어떻게 바라보는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어떻게 전제하는가,
어떻게 넘어가는가.

가수 양희은 씨는 후배들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라는 말로 멘탈관리를 조언한다. 너무 좋은 말이다. 내버려 두는 시선, 인정하는 마음은 많은 것을 이겨내게 하고 가능하도록 만든다.


삶은 하루하루 단순한 반복인 듯 하지만 알고 보면 매 순간 다른 디테일들로 이어져 여기까지 흘러왔다. 내 순간적 충동이나 기분, 감정따위를 삶의 태도로 고정시키려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날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선 잔가지들을 쳐내야 한다. 그건 관계를 정리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잦은 불안과 압박에서 벗어나는 작업이다. 좋은 말로만 포장한다는 말은 아니다. 일일이 모든 것에 다 감정을 관여하는 태도를 경계하라는 말이다. 과거에 얽매이고 쉽게 매몰되는 것으로부터 지금보다 더 과감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트라우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은 그 정도는 아닐지도 모르는데, 트라우마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규정하고 나면 내 모든 결정들이 저 트라우마라는 놈의 영향으로 이뤄지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럴 수 있었다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이다. 감정 안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이상만 바라보지 않고 현실에서 나를 지키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인데, 너무 거창하게 규정한 건 아닐까. 행운이 들어올 여지를 남겨두는 일은 과거로부터 나를 해방해주는 일이다.


오히려 과거 덕분에 지금을 버티는 내가 있는 거라고. 여기까지 잘 왔으니 겨우 그 정도 상처만 한 사람이 아니라고 토닥이는 편이 현실을 더 직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닐까.


나의 과거는 나의 현재를 견디게 해준다.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내 자신이 미워도 다시 한 번.

https://linktr.ee/leedo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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