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빛 / 길But
1.
폐차장의 납작하게 압착된 고철 덩어리,
지붕이 내려앉은
자동차들을 보며 생각한다
자동차를 자동차 답게 만드는 것은
뜨거운 엔진을 담았던 쇳덩이 어디쯤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이 앉았던 자동차의 빈 공간이었을까
사랑의 속성도 이와 같아서
엔진처럼 뜨겁게 돌았던 심장의 기록과
한 사람이 앉았던 빈 공간을 암각화로 남긴다
2.
버스는 뜨거운 여름
러시아워의 아스팔트 위에서
나무그늘로 이마를 가리고 잠시 쉰다
내 출퇴근 계획은
85번 버스기사의 노선순환이라는
계획에 겹치거나 덮어씌여 진다
차창 밖을 내다보던 나는 바람 위의 나뭇잎을
또는 나뭇잎 위의 바람을 바라보다가
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밤이 찾아와도
지구의 반대편은 햇빛 속에 잠긴
노동의 낮이거나 러시아워,
빛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과연 누가
도망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