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리 Jan 17. 2018

아름다운 남프랑스에 가고 싶다  

남편의 고향 아베롱

춥고 미세먼지 가득한 겨울날이 지속되면서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마음조차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럴 때면 비행기 표를 끊어 훌쩍 남프랑스 시골집으로 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남편의 고향 아베롱 Aveyron은 프랑스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지역으로 구릉지와 초원이 펼쳐져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아베롱의 맑은 하늘과 공기를 상상하니 출산예정일이 코 앞에 있지만 않았어도 여행가방을 싸매고 달려갔을지 모른다는 한탄이 터져 나온다.


시골목장
그림같은 곳


아베롱의 위치



일 년에 한두 번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삶이 행운이라고 여겨진다. 온전히 긴장을 풀고 심신을 건강한 에너지로 채우는 순간들의 연속. 풍경, 음식, 친절한 사람들. 한국에서는 파리와 같은 대도시가 유명하고 휴가철이 되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실제 프랑스인들은 진정한 휴식을 위해서 자연적인 도시를 많이 찾는다. 대도시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한 두 달의 긴 휴가는 산과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릴랙스 하며 보내는데, 아베롱 역시 프랑스인들과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아름다운 자연도 있지만 유명한 고적이나 먹거리로 유명한 소도시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시시때때로 행사들이 열리기 때문에 페스티발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이처럼 아베롱에는 수많은 관광지가 있고 시간을 내어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곳은 바로 할아버지의 목장이다. 아베롱 북쪽 끝단의 산 위에 위치한 목장은 남편의 가족들이 매년 성지 순례하듯 찾아오고 모이는 장소다. 연로하시지만 여전히 정정하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가꿔오셨고 가족을 번성하게 하신 역사가 있는데, 소를 치는 방법이 현대화되었을 뿐 소를 키워 삶을 이어가는 전통은 여전히 아들에서 손자로 이어지고 있다.   


봄날의 목장
1981년. 소치는 남자들만 있는 곳이기에 '사랑이 없다고 표현'



사진으로도 아름답지만, 실제 가보면 가슴이 설렌다. 눈 앞에 보이는 어느 것 하나 여유롭지 않은 풍경이 없다.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 즐거운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는 순간을 가진다. 그래서 남편의 친구들이 매년 여름이면 장시간 운전을 해가며 이 장소로 모여드는가 보다.


그리고 이 지역에 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음식이 있다. 바로 알리고 Aligot이다.

 

알리고와 소시지만 있는 단촐한 식사



알리고란 소에서 짠 우유로 직접 만든 치즈와 삶은 감자 등을 넣어 뜨거운 상태에서 마구 쳐대어 만든 음식이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은 산속에서 목동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해 지금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거듭났고, 유명 레스토랑에서도 소개되며 캔으로 된 알리고까지 출시되었다. 이젠 전 세계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요리가 되었지만 현지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알리고 맛에 비할 수가 없다. 막 완성된 따끈따끈한 알리고와 소시지, 빵 한 조각 그리고 와인 한 잔에 풍경을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만찬이 완성된다.





건장한 남자들이 열심히 알리고를 만드는 중
음식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식후에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자연을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초원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기도 하고, 구릉 위로 산책을 가기도 하고, 아이들과 뛰어놀기도 하면서 게으른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가족들과 소소하고 세심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처음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왔을 때 그의 모든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우리네 같지 않게 친척들 간에 다정함이 묻어 나오는 대화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모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모부야."라는 표현 속에 깃든 애정. 내가 친지들을 저렇게 소개해 본 적이 있었을까?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여자 친구로서 처음으로 모든 가족을 만나보는, 어찌 보면 거창한 자리였지만 오히려 즐거웠고 긴장이라고는 전혀 없이 내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의 열린 사고방식을 알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꾸밈이 없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속에 여유가 가득했기에 더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도 그냥 누워버렸다.


남편의 동생도, 어머님도, 이모님도 함께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고지대로 내려쬐는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몰랐기에 후에 Sunburn 덕분에 고생했지만. 잔디에 누워 낮잠을 잤던 2시간은 충분히 달콤하고 자유로왔다.


남편의 고향에 가는 여정은 짧지 않다. 서울에서 파리로 12시간을 날라가 샤를드골 공항에서 다시 오를리 공항으로 이동, 지역 항공기를 타고 1시간을 날라 로데즈Rodez라는 도시 공항에 내려야만 도착한다. 24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여정. 그래도 하루 빨리 가고만 싶다. 긴긴 여정 뒤에 꿈처럼 다가올 휴식을 위해.


아 올여름에도 저곳에 꼭 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